이재원(26, SK)은 타율 4할에 “큰 미련이 없다. 어차피 떨어질 성적”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포수 마스크다. 타율보다는 포수 마스크가 더 소중한 이재원이 이제 서서히 포수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SK지만 이재원의 이런 모습은 분명 큰 수확이자 위안이다.
20일까지 타율 4할3푼3리를 기록하며 리그 수위 타자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이재원은 최근 포수로 선발 출장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16일과 17일 대전 한화전에서 2경기 연속 포수로 선발 출장했고 20일 마산 NC전에서의 안방도 이재원의 몫이었다. 프로 입단 후 기라성같은 선배들에 밀려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한 이재원이 이제 수비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인천고 시절 대형포수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이재원은 준비된 포수다. 프로 입단 후에는 포수 마스크를 쓸 일이 거의 없었지만 상무에서 군 생활을 하던 시절 2년간 주전 포수로 뛰었다. 이재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포수 마스크를 쓰니까 내가 살아있는 것 같더라”라고 말할 정도로 포수 포지션에 대한 애착이 크다. 지난해 마무리캠프에서도 이만수 감독의 지시 하에 포수로 뛰었고 올 시즌 초반에도 포수 및 1루수 훈련을 병행하는 등 기회를 기다렸다.

이재원은 “힘들어도 포수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라고 항상 웃곤 했다. 그리고 SK도 이재원에게 포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정상호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팀의 미래 전략과도 맞닿은 측면이 있다. 이만수 SK 감독은 “블로킹은 세 명(조인성 정상호 이재원) 중 가장 좋다”라고 칭찬할 정도다. 주로 지명타자로밖에 뛸 수 없어 반쪽 능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던 이재원으로서는 좋은 기회다.
물론 보완해야 할 점은 더러 있다. 분명 리그 최고의 포수가 될 만한 자질을 가졌지만 아직은 1군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볼 배합, 수 싸움 등에서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능력은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판단이다. 블로킹은 나쁘지 않은 편이고 송구도 좋다. 올 시즌 도루 저지율이 50%에 이르는데 리그의 대표적 준족들인 이용규(한화)와 박민우(NC)가 이재원의 정확한 송구에 2루에서 횡사했다. 기대를 품을 만한 호송구였다.
여기에 이재원은 신체적으로 튼튼하다는 호평을 받는다. 포수는 필연적으로 잔부상이 많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인데 튼튼한 몸은 하나의 자산이 될 수 있다. “타격에 전념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포수 수비가 타격에 아주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 모습이다. 꾸준히 안타를 때리고 있고 상대 측에서 “쉽게 죽는 법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좋은 타구들을 날리고 있다.
이런 이재원의 등장은 ‘공격하는 포수’의 출현 가능성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사실 포수 포지션은 최근 들어 점점 공격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만수 박경완 등 ‘공격도 되는’ 포수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추세다. 다만 이재원이 경험을 쌓는다면 장기적으로는 ‘3할을 치는 대형포수’의 탄생이 가까워질 수 있다. SK가 이재원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원이 올 시즌 포수로도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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