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칸(프랑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조깅까진 아니고 아침마다 혼자 숙소 근처 산책해요. 공기가 너무 상쾌하잖아요. 팔레 드 페스티발까지는 가까우니까 그냥 걸어 다니고요. 저 근데 이렇게 언론 접촉하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깐느 언제 오신 거예요?”
18일 밤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한 한국영화의 밤이 열린 크로와제 거리의 한 야외 비치 레스토랑. 밤 9시 30분 정확하게 이곳에 나타난 전도연은 갑자기 쌀쌀해진 기온 탓에 매니저의 양복 상의를 걸친 채 구석자리 테이블에서 스타일리스트 등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왜 VIP 룸에 가있지 않냐”고 묻자, “도희야 제작자인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님이 프랑스 영화인들과 뭔가 얘기를 나누고 계시더라고요. 자리를 피해드려야죠”라며 멋쩍어 했다. 공리에 이어 아시아 여배우 중 두 번째로 칸 심사위원에 위촉된 ‘VIP JURY’ 전도연은 한 시간 30분 동안 이곳에 머물며 기자들의 질문과 촬영, 심지어 이곳을 찾은 300여 명의 국내외 게스트들의 폰카 촬영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영화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매니저만 입이 닳도록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제지했지만, 정작 전도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늘까지 경쟁부문에 오른 9편의 영화를 봤어요. 이제 5부 능선 넘은 거죠.(웃음) 하루하루 되게 고되지만 한국 배우를 대표해서 온 거니까 열심히 임하고 있어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모범을 보여야 한국 이미지도 좋아지고요.(웃음) 재밌어요.”
심오한 철학을 담은 영화가 많다보니 한 편 한 편 심사할 때마다 에너지가 바닥나는 느낌일 텐데도 전도연은 이 과정 역시 철저히 즐기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에겐 기본적으로 영어 버전 영화가 제공되는데 수준급 영어 실력을 가진 전도연이지만 한 장면, 대사 하나라도 놓칠까봐 친분 있는 프로듀서를 옆에 두고 이것저것 도움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가 한국 정부에서 수여한 은관훈장을 받는 세리모니였다. 이 광경을 무대 아래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전도연은 수상 후 이어진 기념 촬영을 한사코 사양하더니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무대에 올라갔다. 팔짱과 가벼운 포옹으로 티에리 프레모를 축하해줘 많은 이들을 훈훈하게 했다. 훈장 수여가 끝난 뒤 지인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나눈 칸의 여왕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일행들과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사실 이날 전도연은 30분가량 머물다가 일어설 계획이었다. 티에리도 9시 30분 이곳에 도착해 훈장을 받은 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이전 행사에서 일정이 꼬인 티에리가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다고 알려왔고, 이 사실을 미리 전달받지 못한 전도연은 추운 야외에서 한 시간 넘도록 티에리를 기다려야 했다.
영진위 해외팀의 한 관계자는 “약속 시간을 지킨 전도연씨에게 너무 미안해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자신은 괜찮으니까 편하게 일 보시라고 말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 본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늘 자기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전도연씨가 오늘따라 더 그릇이 커 보였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배우”라고 덕담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중국 배급 관계자는 “중국 영화인들은 장쯔이가 하루 빨리 칸 심사위원이 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이번에 전도연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다. 그런데 막상 오늘 와보니 심사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며 전도연을 치켜세웠다.
수제비 잘 하는 집이 역시 칼국수도 잘 하게 돼있다. 연기 잘하고 미모 출중한 배우가 국제 매너에도 한 수 위라는 걸 보여준 칸의 밤이었다.
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