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칸에서 330V 충격과 벅찬 감동을 안기다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05.21 10: 46

[OSEN=칸(프랑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모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한 330V짜리 영화였다. ‘이렇게 사는 거 맞나’부터 ‘싸구려 동정이나 하며 괜찮게 살고 있다고 자위해온 건 아닌가’하는 자책까지. 극중 코너에 몰린 영남(배두나)과 도희(김새론)의 너덜너덜해진 삶을 보며 ‘이건 픽션일 뿐’이라고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을 만큼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갑갑했다. 엔딩에서 감독이 제시한 처방전이 아니었다면 아마 좀 더 현기증이 났을지 모르겠다.
67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도희야’는 역시 현지에서도 환대를 받았다. 20일 드뷔시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접한 김새론은 감격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했다. ‘도희야’는 더 이상 숨을 곳 없는, 궁지에 내몰려 힘든 결정을 해야 하는 두 외로운 여자의 이야기다. 타인과 제대로 교감해보지 못한 두 사람의 힐링 스토리. 불행한 건 이들의 세상을 향한 호전성이 살기 위한, 비자발적인 선택이란 사실이다. 이 영화를 마주하며 어쩔 수 없이 드는 불편함과 죄책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섬마을 소녀 도희는 계부의 학대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잿빛 여중생이다. 친엄마는 도망갔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소녀. 그런 그녀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상처 난 몸에 연고를 발라주며 단축 번호를 내주는 인생의 첫 보호자가 나타난다. 촉망받던 경찰대 출신이지만, 사생활 때문에 어촌 파출소장으로 쫓겨난 영남이다. 가두리 양식이 생업인 어촌 마을과 예상치 못한 인생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는 영남은 묘하게 포개진다.

영남이 도희에게 마음을 연 건 도희가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밤마다 방파제에서 혼자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이 심야의 퍼포먼스 1호 관객이 돼주며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도희의 방학을 맞아 한 달간 동거하게 된다.
“원래 좁은 바닥이 더 무섭다”는 영화 초반부 대사가 암시하듯, 도희와 영남은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고 영남은 수갑까지 채워진 채 철창에 갇히는 피의자로 추락한다. 보호자가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둔갑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이 영화가 말하려는 부조리와 맞닿아있다. 엄마 같은 영남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희의 몸부림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며 영남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아웃팅’ 하듯 타국에서 애인을 공개해야 했던 배두나는 ‘도희야’에서 자신을 또 한 번 뛰어넘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뜨거운 연기를 뜨겁게 보여주는 건 쉽지만,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차갑게 냉각해 연기하는 건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배두나는 몸속에 거대한 냉각기라도 숨기고 있는 듯 온 냉탕 감정을 자유로이 오간다. 인위적 고아 도희를 응시하는 눈빛만으로 도희를 향한 그녀의 연민과 원망, 모성애로의 변모가 감지될 정도다.
소주를 2리터 생수 페트병에 옮겨 마셔야 할 만큼 주위 시선을 두려워하는 영남 역시 도희 못잖은 경계선상 인물. 매일 새 아빠에게 하루 일과처럼 얻어맞고 밤마다 분노의 뜀박질을 하는 도희는 어쩌면 영남의 눈에 비친 또 다른 자신일지 모른다.
“후유증이 심할 것 같아 출연을 거절했었다”는 김새론은 왜 우리가 지금 이 소녀에게 주목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계적인 연기, 레슨 받은 대로 흉내는 내지만 현장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허둥대는 기성 배우들이 수두룩한데 김새론은 이들과 격이 달랐다. 열네 살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여백을 채울 줄 알고, 영화를 끌고 가는 힘 역시 대단하다. 학대 받거나 폭력에 시달리는 자극적인 장면 보다 슬쩍슬쩍 느껴지는 세상을 향한 원망의 눈초리, 영남을 바라보는 간절한 표정 변화 등은 가히 대체 불가능하다.
난생처음 사람의 정을 느끼게 된 도희가 영남의 영역에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도 대사나 상황이 아닌 작은 제스처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영남의 애정을 확인하고 독차지하기 위해 발톱을 드러내는 장면에선 감독이 얘기한 고양이가 떠올랐다.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식사인 죽은 쥐를 주인 신발에 넣었는데 이를 보고 화가 난 주인이 고양이를 흠씬 두들겨 패고, 다음날 고양이는 더 잘 보이려고 쥐의 껍질까지 벗겨 놓아 주인을 놀라 자빠지게 했다는 서글픈 우화.
아쉬운 점도 있다. 금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연민 장치이겠지만 동남아 불법 노동자까지 영화에 끌어들인 건 다소 작위적이었다는 인상이다. 유치장에 갇힌 영남과 이주노동자를 투샷으로 보여주며 ‘누가 누굴 동정하는가’ 같은 메시지를 던진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좀 더 영남과 도희의 에피소드에 주력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자 메타포인 방파제는 경계에 놓인 위태로운 인물들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발을 잘못 삐끗하면 실족사 할 수 있는 그곳에서 도희는 조명도 없이 위태롭게 춤을 춘다. 그걸 바라보는 어른들은 그 춤을 말려야 할까, 아니면 함께 춤을 춰야 할까. 이 영화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물음표일 것이다. 단편 ‘영향 아래 있는 남자’(07)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10)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첫 장편이다. 120분. 22일 개봉.
bskim0129@gmail.com
< 사진 > ⓒAFPBBNews = News1, '도희야' 스틸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