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새벽이 배우로서의 진가를 발휘한다. 배두나는 송새벽에 대해 '미쳤다'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폭풍같은 에너지와 과장없는 절제가 공존한다. 그간 송새벽의 연기를 진지하게 본 적이 없는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 '도희야'(정주리 감독, 22일 개봉)를 보고 분명 놀라게 될 것이다.
'도희야'는 외딴 바닷가 마을에 좌천돼 내려온 파출소장 영남(배두나)이 폭력에 홀로 노출된 14세 소녀 도희(김새론)를 만나 그녀를 도와주다 오히려 도희의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때문에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영화 속 송새벽은 작고 여린 도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도희의 편이 돼 주는 영남과 대립각을 세우며 보는 이의 분노 지수를 높인다. 하지만 마냥 밉지만은 않다. 용하에게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이는 송새벽의 힘이기도 하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물론 고민은 잠깐 있었죠. 내가 과연 용하란 캐릭터를 잘 할 수 있을까, 란 것에 대해서요. 저 자신한테 의심이 든 부분이 있었지만 작품 자체가 워낙 탁월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정주리 감독에 대해 '도대체 이 양반은 누구지?'란 생각을 했다고. 36살 또래보다 더 성숙한 글발이어서 놀랐단다.
"범상치가 않으시더라고요. 툭툭 말씀을 하실 때 본인만의 느낌이 있어요. 감독님이 촬영에 앞서서 많은 좋은 생각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나리오에 좋았던 느낌들이 영화에 전반적으로 그대로 나왔어요.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걸 해 내셨다는 게 놀랍죠. 굉장히 주관이 뚜렷하신 부분이 있으세요."

'용하'라는 인물이 궁금했다.
"시나리오에 난해한 부분이 많았어요. 영화에 이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거든요. 작품은 전반적으로 너무 좋은데 용하라는 캐릭터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는데 감독님의 '도희가 컸을 때 용하가 돼 있지 않을까요?'란 말이 큰 소스가 됐죠. 내가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이 인물을 표현하는 게 맞나, 의구심이 그렇게까지 진하게 든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 가서 생각을 하고 또 하다가 '굳이 의도적으로 너무 생각하려 들지 말자'란 결론에 도달했고, 그런 마음으로 현장에 가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용하라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아요. '내가 너무 계산하려고 했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털고 나오니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묻어가게 됐어요.
궁금했다. 용하가 왜 도희를 그렇게 때릴까 보다 용하는 과연 도희를 사랑할까가. 송새벽은 "저 역시 그 고민이 제일 컸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용하를 도희를 마음적으로 사랑할까, 그것이 제 첫 고민이였던 것 같아요. 용하와 도희의 관계는 뭘까에 대한 것이요.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용하가 악인인 것 같고 캐릭터가 되게 추상적으로도 보였죠. 용하에 대한 연민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러다 조금씩 몰입해 가게 됐는데, 영화를 보시는 분에 따라 용하와 도희의 관계도 다르게 느끼실 거에요."
영화 속 송새벽은 웃기지 않는다. 한 때는 '코믹 배우'란 수식어로 회자되기도 했지만, '방자전'이나 '아부의 왕' 에서 보인 면모는 그의 스펙트럼 중 그저 일부분이다.
"작품마다 특유의 톤이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가는 거 같아요. 예전 영화에서도 일부러 웃기려고 그런건 절대 아니고, 작품마다 톤과 호흡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묻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 말투가 특이하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냐고 그런 말도 있어서 저한테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그것이 저의 큰 숙제이기도 했고요."
칸 영화제 참석을 앞두고 "사실 잘 모르겠다. 실감도 잘 안나고"라며 웃어보인 그다. '도희야'를 통해 가서 기쁘다는 그는 "전세게 사람들이 보는 장이라는 게 좋은 것 같다. 한국 관객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뿌듯하다"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작품에서 송새벽은 배두나, 김새론과 쟁쟁한 삼각 구도를 이룬다. 개성 강한 세 배우가 뽐내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송새벽은 김새론에 대해 "슛 들어가면 샥 바뀌는 게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한 번은 거의 마지막신 촬영 이었는데 그 신 찍을 때 되게 힘들었다. 그런데 새론이가 나를 쳐다보는데 나를 딴 데로 데리고 가더라. 그 신을 연기하는 내 나름의 생각이 있었는데, 얘가 나를 끌고가더라. 그 기분이 정말 좋았다"라고 전했다.
배두나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두나를 보면서 좋은 배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연 배우가 끌고 가는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가 그걸 했더라고요. 되게 담백하고 명확하고 자제하는 연기를 보며 '와 멋있는 친구다'라고 감탄했죠. 더 멋있는 게 '나는 도희 때문에 이 영화를 하게 됐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나도 그런데. 둘 다 작품을 전반적으로 보고 한 거라 도희의 좌청룡 우백호가 되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배두나라는 배우는 참, 항상 기대가 돼요. 배두나와 함께 인터뷰를 할 때도 내가 항상 설레더라고요. 항상 사람들을 많이 생각해요. 배려심이 크죠. 사람으로도 상대 배우로도 같이 호흡하는 게 너무 좋아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용하와 영남의 대결 모습이 마치 러브샷 같이 나온 스틸이 있었다는 것. "제압을 하기 위해 뒤에서 잡았는데, 어떻게 보면 백허그 모습 같더라고요. 현장에서 '도희야2' 포스터라며 웃었죠. 2탄은 '영남아'? 흐흐."
nyc@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