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는 정근우와 이용규만이 FA 모범생이 아니다. 숨은 FA 모범생이 있으니 바로 '전천후 선수' 한상훈(34)이 주인공이다. 공수에서 팀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며 FA 모범생으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한상훈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어 4년 총액 13억원에 원소속팀 한화와 계약했다. 한화에서 10년간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70억원의 정근우, 67억원의 이용규가 외부에서 영입된 가운데 내부 FA 중에서도 20억원에 계약한 이대수에 가렸다.
하지만 한상훈은 그라운드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시즌 초반 2루수 정근우, 유격수 송광민, 3루수 김회성 체제에서 벤치를 지킨 한상훈이지만 송광민이 수비 불안에 시달리자 주전 유격수로 등용됐다. 이제는 유격수 한상훈, 3루수 송광민 체제가 굳어졌다.

송광민이 수비 부담을 덜고 타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만 그 전제는 한상훈의 뛰어난 활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격수 수비에서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로 철통같이 지키고 있고, 타격에서도 상하위 타순을 가리지 않고 어디 갖다 놓아도 제 몫을 하기 알짜 선수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한상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30경기에서 68타수 21안타 타율 3할9리. 특히 볼넷 11개를 얻어 출루율이 4할5리에 달한다. 규정타석을 채운 것은 아니지만 표본이 적지 않다. 3할대 타율, 4할대 출루율은 테이블 세터로 제격이다. 1번 이용규, 3번 정근우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2번타자로 나섰을 때 타율이 무려 3할7푼이고, 출루율은 놀랍게도 5할. 타격도 세부적으로 보면 영양가 만점이다. 주자있을 때 30타수 13안타로 타율이 무려 4할3푼3리. 득점권에서도 15타수 6안타로 정확히 4할 타율을 자랑한다. 심지어 대타 타율도 3할3푼3리로 찬스에서 강한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타격 뿐만 아니라 수비도 어느 포지션에 기용해도 제 몫을 다한다. 원래 주 포지션은 2루수이지만, 정근우에게 자리를 내준 뒤 유격수로도 기용되는 일이 잦아졌다. 2루수-유격수를 동시 커버하는 게 쉽지 않지만 유격수로서 한상훈의 실책은 2개 뿐이다. 그가 유격수로 나서면 확실히 한화 내야 수비가 안정화된다.
물론 한상훈은 팀 상황에 따라 다시 백업으로 기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은 문제다. "선발이든 백업이든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팀이 필요로 하는 위치에서라면 뭐든지 다하겠다. 팀이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이 한 몸을 바칠 준비가 돼있다"는 게 한상훈의 말. 정말 한화밖에 모르는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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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