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칸, 경쟁작은 없었지만 이들이 있어 든든했고 값졌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5.25 08: 21

[OSEN=(칸)프랑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제67회 칸 국제영화제가 24일 오후 7시(현지시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12일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공식 폐막일인 25일엔 살레 드뷔시 등 5개 극장에서 주요 초청작 26편을 재상영하는 리런(Rerun) 행사가 계획돼 있다. 한국 영화로는 ‘표적’이 유일하게 살레 바진 극장에서 밤 9시에 상영된다. 미드나잇 섹션 초청작이라 가장 마지막 타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영화는 2년 연속 경쟁 부문 진출작이 없어 관심과 긴장도가 덜 했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밀양’과 ‘하녀’로 칸과 친숙해진 국제 배우 전도연이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쾌거가 있었다. 한국 배우 중 최초이며, 아시아권을 통틀어도 중국의 공리에 이어 심사위원이 된 두 번째 여배우였다.
 덕분에 전도연은 개막 전 일찌감치 칸에 여장을 풀고 보름간 ‘빡센’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그러던 중 영화제 중반엔 감기 몸살에 걸려 보는 이를 안쓰럽게 하기도 했다. 영화란 취미나 소일거리로 접하면 언제나 부담 없고 흥미로운 대상이지만, 심사나 이를 생업으로 삼으면 이것만한 고역도 없다. 평소 영어에 능통한 그녀이지만 보다 완벽한 심사를 위해 대사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친분 있는 프로듀서를 그림자처럼 대동해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런 악바리 프로 정신이 오늘의 전도연을 만든 마중물이었을 것이다.

 비경쟁부문 감독주간에 초청된 ‘끝까지 간다’는 올해 칸 특수를 가장 짜릿하게 맛본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호평이 있었지만 현지 반응은 예상 외로 더 뜨거웠다. 오전 9시 프레스 스크리닝은 이른 시간임에도 만석이었고, 시체안치소 장면을 비롯해 폭소와 탄식 같은 리액션이 10분 간격으로 이어져 김성훈 감독과 제작사를 흐뭇하게 했다. 천신만고 끝에 8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내놓은 김성훈 감독의 통한의 어퍼컷이 한국과 칸에서 보란 듯 주효한 것이다. 칸에서도 차분한 어조를 유지한 이 강릉 출신 감독은 이날만큼은 “꿈은 잘 때만 꾸는 건 줄 알았다”며 기쁨을 만끽했다.
독창성과 유니크한 영화를 주로 소개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도희야’도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후한 상찬을 들었다. 칸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에 구원이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잘 포개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일부 박한 평점을 매긴 평론가도 있었지만, 신예 정주리 감독의 깊이 있는 연출과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의 인상적인 연기에는 대체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특히 14세 소녀라곤 믿기지 않는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김새론에겐 ‘몬스터 액트리스’라는 별칭이 따라붙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를 리메이크한 ‘표적’도 칸 후반부를 의미 있게 장식했다. 공포와 스릴러를 자정 가까운 시간에 상영해 장르 특성을 극대화한 미드나잇 섹션 초청작답게 칸의 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원작 감독도 “내 영화 보다 훨씬 좋았다”며 6000마일이나 먼 곳에서 날아온 손님들을 흡족케 했다. 생애 처음 칸 레드카펫을 밟은 김성령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게인 칸’을 다짐하기도 했다.
코마 상태에 빠진 엄마와 간호하는 딸의 딜레마를 30여분으로 압축해 호평 받은 단편 영화 ‘숨’의 권현주 감독도 지구촌 영화인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홍대 미대 출신으로 중앙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이 늦깎이 감독은 칸에서 제공한 호텔 바우처를 현금으로 바꿔 함께 고생한 선후배 동료들과 공동 숙소를 얻어 쓰며 빠듯한 칸 일정을 소화했다. 개막식이 열린 2000석의 뤼미에르 대극장 2층에서 1층 로열석에 앉은 전도연의 뒷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괜한 허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베니스, 베를린과는 규모와 격이 다른 영화제로 성장한 칸 영화제는 세계 영화인들의 환호와 탄식을 뒤로 한 채 내년 5월을 기약한다. 축복받은 하늘과 공기, 여유로운 바람과 햇살의 도시와 마침내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듀 코트다쥐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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