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특이한 무덤 모양은 그의 유언 때문이었다.
13일 오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중앙에 위치한 콜럼버스의 무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다. 4명의 사람이 관하나를 떠받들고 서 있는 이 무덤은 콜롬버스의 마지막 유언 때문에 만들어 진 무덤이었다. 4사람은 14세기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의 왕을 의미하는 것으로 청동으로 만들어 진 무덤이다.
콜롬버스는 이탈리아 출신 인도 신항로 개척을 위해 후원자 찾던 중 스페인 여왕 이사벨에게 후원을 요구했다. 유럽에서 인도까지 육로로는 수개월이 걸리고 매우 험난한 길로 죽는 일도 허다했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인도산 향신료가 인기를 끌고 있었고 그 향신료를 찾기 위해 새로운 항로를 찾는데 혈안이 돼있었다.

콜롬버스가 새로운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면 스페인은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을뿐더러 무역으로 유럽 내 최강국 급부상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대신들의 반대에도 여왕 이사벨을 후원금을 지원했다. 이에 콜롬버스는 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 호 항해 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콜롬버스는 항해를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인도를 찾지 못해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향해 시작한지 70일 만에 섬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서인도라고 생각했지만 인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곳은 중앙아메리카 바하마제도였다. 여왕과의 약속 때문에 담배, 고구마, 야자, 마 등 지역의 토산물들을 챙겨 항해 7개월 만에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대신들의 의심에도 여왕의 신임을 받은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를 나섰다. 실패를 바탕으로 아래쪽으로 항해 했지만 인도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 하지만 콜롬버스는 이 곳에서 원주민의 금이 눈에 들어왔고 콜럼버스는 섬에 머무는 동안 원주민들의 금을 빼앗고 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여왕의 총애를 받은 콜롬버스는 제독지위를 얻으며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콜롬버스는 이 후 두 번의 항해를 더 떠났지만 인도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사벨 여왕은 페르디난드 2세가 왕위에 오르자 대신들은 사기꾼으로 몰아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재산과 제독 직위를 압수 당한 콜롬버스는 비참한 노년을 보내게 됐다.
콜롬버스의 후손들은 “죽거든 신대륙에 묻어다오. 죽어서도 스페인 땅에 발을 닿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신대륙인 쿠바에 시신을 묻었다. 하지만 1989년 쿠바가 스페인 령이 해제되자 후손들은 유골의 훼손우려로 스페인으로 유골을 가져와 시신을 매장하려 했다. 하지만 유언 때문에 묻는 것 대신 네 개의 조각상으로 관을 들고 있는 모습의 무덤이 탄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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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TV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