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왕’은 집에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일행들과 한 바탕 담소를 나누며 니스공항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67회 칸 영화제 폐막 다음날인 26일 오전 9시(현지시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하는 에어프랑스 탑승 30분 전. 10여개의 화물을 부치며 수속을 밟는 전도연의 표정은 니스의 화사한 아침 햇살을 닮았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라는 큰 짐을 내려놓은 그녀의 어깨엔 대신 무게 1kg이 될까 말까한 가벼운 백팩이 대신하고 있었고, 장거리 비행을 앞둔 캐주얼한 차림과 운동화가 그녀의 털털한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선글라스로 작은 얼굴의 절반을 가렸지만 하얗고 뽀얀 피부는 감출 수 없었다. 규정상 심사과정에 대한 질문엔 노코멘트 하겠다는 말로 선수를 친 그녀는 “얼큰한 육개장 칼국수와 순댓국이 머리에 어른거려 참기 힘들다. 서울 도착해 뭐부터 먹을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12일간 18편의 경쟁작을 보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동생한테 혹시 칸 심사하다가 쓰러진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했을 만큼 스케줄이 고됐다. 날마다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봐야 했고, 중간 중간 잡혀있는 공식 일정에도 참여해야 해 쪽잠 한번 못 잤다. 숙소엔 메이크업 고치고 드레스 갈아입고 밤마다 파김치가 돼 쓰러져 잔 기억 밖에 없다.”
-다른 심사위원과의 팀워크는 어땠나.
“환상적이다 싶을 만큼 좋았다. 특히 제인 캠피언 위원장은 ‘피아노’ 때부터 존경하던 감독인데 이렇게 심사위원 자격으로 만나게 돼 영광이었다. 심사하다가 간혹 언쟁이 벌어진다는 소문도 있어 바짝 긴장했는데 기우였다. 여덟 분 모두 한 카리스마 하시고 소신 뚜렷한 분들이지만 심사할 땐 상대방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
-7년 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로 그 무대를 다시 밟았는데 감회는.
“그땐 워낙 경황이 없었고(잠시 당시를 회상하는 듯 했다) 뒤에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는 것도 잊을 정도로 감격 그 자체였다. 이번엔 위치가 바뀌어 수상자들을 뒤에서 바라보니 또 느낌이 다르더라. 울먹이는 수상자들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잠깐 났다.”
-너무 이른 나이에 정점에 올랐다는 생각은 없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여우주연상을 받고 심사위원이 될 만한 좋은 나이가 따로 정해져있는지 되묻고 싶다. 배우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작품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존재 아닌가. 부족하지만 나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고, 칸에서의 영광은 앞으로도 초심 잃지 말고 더 열심히 연기하라는 격려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 사이에서 전도연은 어떤 존재였나.
“다들 저를 어리게 보셨다가 제 나이를 알고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또래였던 이란 심사위원인 배우 레일라 하타미(42)가 가장 경악스러워했고, 미국 배우 겸 감독 소피아 코폴라(43)도 저보다 두 살 언니였는데 제가 동생이라니까 제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여섯 살인 딸 선물은 준비했나.
“시간이 없어서 뭘 사갈까 고민만 했는데 어제서야 아이가 좋아할 만한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 요즘 우리 애가 꽂힌 만화 캐릭터가 있는데 아쉽게도 그건 찾지 못 했다.(웃음) 가족에겐 아내이자 엄마인 저 자체가 선물이 아닐까.(또 웃음)”
-항공기에서 기내 영화를 볼 건가.
“(단호하게)노. 당분간 영화 끊어야 할 것 같다.(웃음) 칸에서 너무 과식한 느낌이다. 기내에선 좋은 꿈꾸면서 밀린 잠을 실컷 잘 수 있으면 좋겠다.”
-‘무뢰한’ 촬영은 언제부터 들어가나. 상대 배우가 김남길로 확정됐는데.
“돌아가서 2주 후 크랭크 인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웃음) 여기 오기 전 제작사 대표와 감독님, 남길씨와 다 같이 한번 만났다. 남길씨는 처음 봤는데 성실하고 에너지가 좋아 보였다. 작품도 잘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가을엔 ‘협녀’ 개봉도 앞두고 있다.
“아직 편집실도 한번 못 찾아간 상태라 영화가 어떻게 완성되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인어공주’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박흥식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다.”
-끝으로 굿바이 칸에게 한 마디.
“칸은 개인적으로 충전과 방전을 수시로 맛보게 해주는 묘한 매력의 두 얼굴 영화제인 것 같다. 한없이 충전되는 것 같은 포만감이 들다가도,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직류 전류가 돼 저를 끊임없이 자극시킨다. 칸은 배우로서 훌륭한 경유지인 건 맞지만, 최종 목적지는 변함없이 좋은 작품,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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