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휴식에 장시간의 이동 거리. 류현진(27, LA 다저스)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치 않았지만 류현진은 이 모든 조건을 극복하며 시즌 최고의 역투를 만들어냈다. 컴퓨터도 착각할 정도의 위력적인 구위였다.
류현진은 27일(이하 한국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 등판해 7회까지 단 한 타자에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는 퍼펙트 경기를 하는 등 역투했다. 비록 8회 선두타자 프래지어에게 2루타를 맞으며 기록이 깨졌고 불펜 난조까지 겹치며 7⅓이닝 3피안타 7탈삼진 3실점하긴 했지만 분명 미 전역의 눈길을 끈 역투였다.
왼 어깨 통증에서 복귀한 뒤 두 번째 경기였다. 복귀전이었던 22일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6이닝 2실점 승리투수가 된 류현진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휴식기가 짧았다. 지난 경기에서 투구수가 89개로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필라델피아에서 LA까지의 이동거리도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LA까지는 비행기로 약 5~6시간이 걸린다. 일반적인 국내선 비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힘 있는 직구로 신시내티 타선을 윽박질렀다. 직구 최고 구속은 95마일(153㎞)까지 나왔고 93마일(150㎞) 이상의 공이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여기에 70마일 중반대의 느린 커브를 적절하게 섞었다.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보다 구사 비율이 더 높았다. 큰 구속 차이에 신시내티 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커브를 던지다 직구로 유인하면 배트가 그대로 따라 나왔다. 모두 공에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회 90마일 초반대였던 류현진의 직구는 4회 들어 93마일~95마일을 유지했다. 종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7회에는 93마일 이하의 공이 없었고 최고 95마일이 찍혔다.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덩달아 다른 구종들의 구속도 높아졌다. 메이저리그 게임데이는 이날 류현진의 86마일 공을 투심패스트볼로 분류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슬라이더에 가까웠다. 류현진은 투심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을 뿐더러 궤적은 날카롭게 꺾이는 슬라이더였다. 컴퓨터조차 헷갈리게 할 정도로 류현진의 공에 힘이 있었던 셈이다.
실제 류현진은 7회까지 직구 평균 구속이 92.9마일에 이르렀다. 150km에 이르는 공을 꾸준하게 7회까지 던진 셈이다. 땅볼이 10개, 뜬공이 4개로 땅볼 비중이 높았고 삼진 7개는 모두 헛스윙이었다. 그 중 직구로 4개, 슬라이더로 2개, 커브로 1개를 잡아냈다. 범타 유형은 직구 7개, 슬라이더 3개, 커브 2개, 체인지업 2개로 고른 분포를 자랑했다. 슬라이더가 9개에 불과했던 반면 커브는 20개로 커브의 구사 비중이 높았는데 이 커브가 제대로 먹혔다.
류현진은 지난해 4일 휴식 후 약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 지난해 4일 휴식 후 경기에서는 평균자책점이 3.26으로 5일 휴식(2.12)보다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그런 약점마저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판이었다. 더 이상 진화할 곳이 없어 보였지만 류현진은 이런 상식을 비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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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타디움(LA)=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