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28, 넥센)의 불붙은 방망이가 식을 줄을 모른다. 원래부터 무서웠지만 지금은 피해가는 것이 상책으로 보일 정도다. 프로야구 역사상 월간 최다 홈런에도 도전 중이다. 하지만 더 큰 가치는 기록보다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소중함이다.
박병호는 2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4회와 5회 연거푸 홈런포를 터뜨리며 팀의 10-5 승리를 이끌었다. 팀의 5연패를 끊어내는 중요한 홈런이자 축포였다. 박병호의 홈런 두 방은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는 위력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적잖았다. 박병호는 이날 2개의 홈런을 쏘아올림으로써 5월 20경기에서 13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하나하나 쌓다보니 대기록이 눈앞이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월간 최다 홈런 기록은 이승엽(삼성)과 김상현(SK)이 가지고 있다. 이승엽은 1999년과 2003년 5월 15개의 홈런을 쳤다. 2003년은 이승엽의 야구인생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김상현도 생애 최고의 시즌이었던 2009년 8월 한 달 동안 15개의 홈런을 친 기억이 있다. 김상현은 이 기세를 몰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직행했다. 그런데 박병호가 이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직 4경기가 남았고 그 4경기는 박병호에게 익숙한 목동구장에서 열린다. 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박병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박병호는 27일 경기 후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홈런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라며 기록에 대한 이야기는 피해갔다. 굳이 수치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시즌을 치르겠다는 각오가 묻어 나온다. 들뜬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현명한 처사다. 홈런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가 있다. 그 때를 맞추지 못하면 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도 가뭄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욕심을 내면 타격 밸런스가 무너진다. 지금 상황이 좋은데 굳이 모험을 걸 필요가 없다. 기록은 세운다면 영광이겠지만 그 기록 자체가 시즌의 최종 성적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박병호는 잘 알고 있다. 의식적으로 홈런에 대한 이야기를 자제하는 이유다.
어쩌면 이미 ‘신기록’과는 관계없이 값어치가 환하게 빛나고 있는 박병호다. 올 시즌은 외국인 보유 규정 변경에 따라 9명의 외국인 타자들이 속속 입국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그들이 뿜어낸 열기는 4월 한 달 내내 뜨거웠다. 너도나도 홈런쇼였고 외국인 거포들의 잔치였다. 국내 타자들의 위기설도 나돌았다. 4월 기록만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박병호가 앞장 서 그 위기설을 잠재웠다. 토종 타자들이 외국인 이상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프로야구를 대표해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박병호는 단순한 넥센의 선수로만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홈런 부문에 있어 프로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박병호의 괴력이 더 큰 박수를 불러모으는 이유다. 그 박수는 15홈런을 치든 그렇지 않든 잦아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