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최고 리드오프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각 팀의 리드오프들이 대부분 맹활약을 이어가며 ‘최고’에 대한 논쟁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아직 결론이 날 시기는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서건창(25, 넥센) 또한 그 후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올 시즌 리그의 리드오프 구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외부에서 영입된 선수가 자리를 꿰찬 경우다. 이용규(한화) 이대형(KIA) 같은 선수들이다. 내부에서 자리를 옮긴 선수들도 있다. 김강민(SK) 민병헌(두산)이 이 바구니에 속하는 유형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선수들도 있다. 일종의 구관 개념인데 서건창은 이 부분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다.
굳이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볼 필요도 없다. 첫 줄만 살펴봐도 서건창의 맹활약을 실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서건창은 27일까지 전 경기(44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7푼2리, 68안타, 34득점, 15도루, 21타점을 올리고 있다. 타율은 리그 4위, 최다안타는 리그 1위, 득점은 리그 6위, 도루는 리그 5위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무려 0.956가 나온다. 리드오프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성적이다.

사실 서건창은 지난해까지 전형적인 리드오프 유형의 선수로 분류됐다. 맞히는 능력이 있고 발이 빠른 선수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장타력도 크게 향상됐다. 홈런은 2개지만 2루타 11개, 그리고 장타와 빠른 발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3루타도 6개나 된다. 아직 시즌 초·중반이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놀라운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몸이 커진 것은 아니다. 힘이 부쩍 늘어난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 특별히 달라진 것 또한 없다. 서건창은 마음가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서건창은 최근 툭 갖다 맞히는 컨택 위주의 스윙보다 강한 타구를 생산하는 양상이 도드라진다. 이에 서건창은 “리드오프라고 해서 출루에 중점을 두고 공을 보기보다는 쳐서 나간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집중력도 힘이다. 서건창은 “한 타석 한 타석 집중력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결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공이 잘 맞다보니 자신감도 부쩍 붙었다. 더 강한 타구가 나오는 원동력이다. 실제 27일 목동 SK전에서 서건창은 5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3안타는 물론, 아웃이 된 타구도 모두 강하게 날아갔다. 첫 타석은 중견수 김강민이 뒷걸음질치며 잡았고 네 번째 타석은 투수 임경완의 글러브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였다. 자신감 있는 스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타구의 질이었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다. 서건창은 2012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타율 2할6푼6리에 39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또 하나의 신고선수 신화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부상과 부진으로 86경기 출장에 그쳤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극복한 서건창은 이제 웬만한 굴곡에는 끄떡하지 않는 덤덤한 심장까지 갖추게 됐다. 서건창은 올 시즌 특별한 기복이 없다는 질문에 “아예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슬럼프 탈출과 지속성의 기본이다. 서건창을 계속 주목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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