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개막 이후 2개월 가까이 지나고 팀당 최소 42경기 이상을 소화했지만, 아직 완봉승을 기록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완투도 2명의 외국인 선수(더스틴 니퍼트, 릭 밴덴헐크)에게서 나온 것이 전부다.
류현진(LA 다저스)의 미국 진출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없다는 점은 계속해서 지적됐던 프로야구의 문제다. 양현종(KIA 타이거즈), 유희관(두산 베어스) 등 좌완투수들이 토종 평균자책점 1, 2위로 호투하고 있지만, 토종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완봉은 아직까지 없다.
과거 프로야구 최고의 명투수 출신인 KIA 선동렬 감독은 완투가 적고 완봉이 없는 이유로 예전 같지 않은 투수들의 마음가짐을 꼽았다. 선 감독은 이에 대해 “지금 투수들은 6~7회만 던져도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투구 수가)100~110개 정도 되면 바꿔주지만, 옛날엔 그런 것도 없었다. 나는 (현역시절에)바꿔달라고 했는데도 안 바꿔줬다. 내가 그러면 꾀병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웃었다. 실제로 해태 시절 김응룡 감독이 선 감독을 기용하던 방식은 현재 기준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혹사로 통한다. 버텨내고 선수생활을 길게 유지한 선 감독이 뛰어난 투수였을 뿐이다.
선 감독은 현역시절 일화도 하나 소개했다. “시즌 초반에 비가 계속 와서 기온도 낮은 날이었는데, 아파서 바꿔달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던지라고 해서 던졌다. 그랬더니 다음날 아파서 어깨가 올라가지도 않더라. 결국 건초염으로 1년을 쉬었다”는 것이 선 감독의 증언. 선 감독은 건초염으로 1992년에 11경기에서 32⅔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아픈 어깨로도 던질 수 있을 때까지 던졌던 선 감독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의 에이스 부재와 타고투저 현상은 단순히 외국인 타자 영입으로 인한 일은 아니다. 선 감독은 투수 출신답게 투수 개개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고 있었다. 통산 367경기 중 선발로는 109경기에 던졌다. 그러나 완투 68회와 29차례의 완봉승을 달성했다. 선 감독이 투수들의 정신력을 강조한 이유다.
물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8~90년대 혹사로 인해 투수들의 수명이 단축됐던 것은 이후 5인 선발 로테이션 확립과 선발-불펜의 확실한 분업으로 인해 개선됐다. 하지만 기량 발전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수들 스스로가 한계 투구 수와 이닝을 정하고 거기서 스스로 멈춰버리는 것은 분명 생각할 여지가 있는 문제다.
과거에 비해 좋은 마무리투수가 많아진 것은 훌륭한 볼거리지만, 혼자서 한 경기를 막았던 투수에 대한 추억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팬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모든 투수들이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을 깨고 자기 스스로 만든 한계를 넘어서야 에이스가 될 수 있다. 지금의 타고투저 현상은 이를 극복해야 하는 투수들에게는 시련이지만, 선 감독의 말을 곱씹어보면 장차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가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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