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희는 단연,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여배우다. ‘화차’에서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한숨에 사로잡았던 그는 후속 작품 ‘연애의 온도’에서 같은 세대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생활 연기를 선보여 다시 한 번 인상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명실상부 ‘믿고 보는 배우’의 자리에 올라선 이 여배우가 선택한 다음 작품, ‘우는 남자’는 어떤 영화일까.
“‘우는 남자’는 남자 관객들도 좋아하고 여자 관객들도 좋아할 거 같은 영화에요. 요새는 여자 관객들도 액션을 좋아하니까요. 감독님의 스타일이나 색깔이 나오는 게 있고요. '아저씨'보다는 사람에 더 집중하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액션 하나하나 몸동작보다 감정이나 눈빛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했던 것 같아요.”
‘우는 남자’는 이정범 감독이 ‘아저씨’ 이후 약 4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강한 남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점과 액션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제2의 ‘아저씨’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보셔야지 (차이점을) 아실 것 같아요. 감독님도 ‘그럼 그 다음은 제2의 ‘우는 남자’가 되는 거냐’고 하셨어요.(웃음) 그렇지만, 이해해요. 어떤 작품이 인상 깊으면 보기 전에는 그 작품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서 김민희가 맡은 역할은 남편과 딸을 잃고 치매 걸린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살던 중 미국 출신 킬러 곤(장동건 분)의 타깃이 되는 여자 모경 역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내적으로는 극심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캐릭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 톤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김민희는 “감정을 뿜어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역할을 선택했던 이유 역시 그 감정이었음을 알렸다.
“영화에서 한 가지 감정을 가지고 가는데 그 감정이 깊었고, 하나의 감정이었어요. 그걸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데 뭔가를 더 많이 살을 붙이고 만들 수 있는 그런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살아있게 살을 입히고 하는 재미가 있겠다 싶었죠. 모경이 갖고 있는 조금 싸늘한 느낌, 차가운 느낌이 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슬픔이나 그런 걸 표현하지 않고 두는 그런 게 매력적이었어요.”

시나리오를 보며 마음을 끌었던 것은 가족을 잃은 후 희망을 놓아버린 여자의 감정이었다. 김민희는 이 감정에 대해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심장이 멎은 채 그냥 움직이는 사람 같았다”고 표현했다.
아직 아이를 가져보지 않은 김민희에게 모성애를 발휘하는 역할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김민희는 경험했던 감정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보다 그 상황에 대해 상상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 연기하는 즐거움이라 말했다. 배우들마다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이 있지만, 어떤 감정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김민희에게 어울리는 답이었다.
선배 장동건과 함께 하는 신은 아쉽게도 딱 한 장면 밖에 없었다. 아쉽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다음에 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장동건과) 만나는 장면은 한 신 밖에 없었어요. 현장에 같이 있고 선배가 하는 걸 보고는 했지만, 그 한 장면이 호흡은 짧았는데도 감정이 좋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매력 있기도 했어요. 주인공이 전형적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게 그게 아니에요. 멜로가 아니에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 물으니, 액션 장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작 본인은 액션 장면이 없지만 액션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정범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그러고 보니, 스크린에서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김민희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액션은 굉장히 어려워요. 볼 땐 너무 즐거운데 그런 장면을 만들려면 하루 종일 액션을 반복하고 합을 맞추고 해야하죠. 그런 게 너무 힘들고 대단해 보이시더라고요. 연습이 많이 필요하고, 준비도 많은데 현장에서도 한 번에 끝이 나는 게 아니니까. 이번에 감독님께서 곤이란 인물에게 원하는 건 액션 중에서도 드러나는 감정이었을 거에요. 그것 때문에 장동건 선배가 힘들었을 거예요.”
이어 이정범 감독에 대한 칭찬과 감사가 이어졌다. '화차', '연애의 온도'에서 두 여자 감독과 촬영했던 경험에 비춰 특별히 성별 때문에 달랐던 건 없다고 했지만, 감독에게 받은 좋은 인상이 큰 듯했다.

“감독님은 굉장히 좋은 분이에요. 배우의 입장에서 생각을 먼저 해주시는 분이에요. 어떤 연기를 할 때, 예를 들어 감정적으로 힘든 연기를 할 때 모니터를 보시면서 눈이 촉촉하게 젖으세요. 마음이 여리신 분 같아요. 굉장히 마초적인 분일 줄만 알았는데 물론 실제로도 그런 분이지만 여린 감성을 가진 분이에요. 그래서인지 배우들이 굉장히 보호 받으면서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저를 많이 돌봐주셨어요. 잘 이끌어 주시고 정말 권위와 품위를 가진 좋은 감독님이에요.”
김민희의 매력은 시쳇말로 '무심한 듯 시크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특별한 개성이다. 많은 여성팬들의 추종을 받는 이 '무심한 듯 시크한' 분위기는 스타일리시한 그의 패션에서도 풍겨져 나온다. 그 때문일까. 여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김민희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중요한 건 똑같다"고 조금은 무심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부드럽고도 강인한 여배우의 성품이 엿보였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아요. 과거에도 중요했던 시기였고 지금도 중요한 시기죠. 그래서 지금이 더 특별히 중요하다 생각을 안 해요.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나머지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중요한 일이 아닌 걸로 되버리잖아요. 매 순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히 중요할 것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여유가 생기고요. 오히려 이번에 목숨 걸고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노력했던 것보다 결과가 조금 크지 않아도 실망이 적고요. 저에게는 늘 모든 순간이 중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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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