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에도 몇 번씩 감정이 변하지만 이 간극을 제대로 표현하는 배우가 있다. 이제 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승기의 이야기다. 이승기의 물오른 연기력은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이끌고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승기는 SBS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서판석(차승원 분)이 이끄는 강력 3팀의 신입 형사 은대구 역을 맡았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차갑게 굴지만 가슴 속엔 어릴 적 따뜻함과 다정다감함이 숨겨져 있는 은대구의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하고 있는 것. 이승기는 겉과 속이 다른 은대구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지난 29일 방송된 '너희들은 포위됐다' 7회에서는 목격자 증언을 놓고 대립하는 은대구와 서판석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서판석은 포장마차에서 칼로 피해자를 찌른 범인을 찾기 위해 유일한 목적자인 포장마차 주인에게 범인의 얼굴을 확인해 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포장마차 주인은 보복이 두려워 이를 꺼렸다.
이를 지켜보던 은대구는 포장마차 주인에게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돌려보냈다. 이어 은대구는 과거 증인이 보복을 당한 사건을 읊으며 2003년 목격자 증언으로 살해당한 마산 양호교사 살해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살해당한 양호 교사는 은대구의 어머니. 서판석을 향해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소리치며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는 은대구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 한 쪽을 아프게 했다.
이후 은대구는 옥상으로 올라가 샌드백을 치며 "이 중요한 순간에. 11년을 기다려놓고 이 중요한 순간에"라고 후회했다. 지금까지 남 앞에서는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던 그가 과거 자신이 겪은 일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목격자를 보자 감정이 통제가 안 된 것. 짧은 장면이었지만 분노부터 후회까지 은대구의 눈빛과 표정에서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배어 나왔다.
이렇게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던 은대구도 사랑 앞에서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첫 키스 후에도 동료라고 단정 지었지만 털털하고 변함없이 밝은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는 어수선(고아라 분)에게 은대구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것. 어수선에게 매번 툴툴대지만 어느새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은대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자신을 위해 막춤과 노래를 선사하는 어수선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점점 사랑의 감정이 커지고 있음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이승기는 '구가의 서', '더킹 투하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의 드라마를 통해 가수가 아닌 배우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왔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표현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승기는 극과 극을 넘나드는 감정선을 밀도 높은 연기로 펼치고 있다. 분노, 후회, 슬픔 이제는 사랑의 감정까지 표현하며 은대구가 가진 복잡한 내면을 자연스럽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이승기는 선배 차승원과의 기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은대구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대립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죽이며 브라운관에 집중하게 되는 것. 그뿐만 아니라 P4(Police4)와도 남다른 케미스트리(사람간의 화학작용)를 자랑하고 있어 어느 배우와 연기를 해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호흡을 선사한다.
이제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은대구와 어수선의 본격적인 러브라인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또 은대구와 서판석의 과거 인연이 서서히 수면위로 드러나 갈등이 최고조로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야 하는 이승기의 연기력이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inthelsm@osen.co.kr
'너희들은 포위됐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