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차승원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차승원과 여성스러움은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큰 키에 완벽한 몸매, 저음의 목소리까지 그는 이상적인 남성에 필요한 외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인 듯 보인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를 연기하는 ‘상남자’ 차승원의 모습은 어떨까.
영화 ‘하이힐’을 두 주 가량 앞두고 만난 차승원은 SBS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촬영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몇 분 늦은 시간, 인터뷰 장소에 가까스로 도착한 그는 “미안하다”며 멋쩍은 모습으로 들어섰다. 공간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한 존재감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철없는 신참 형사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강력계 팀장 서판석 역으로 남다른 카리스마를 발휘 중이다.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오랜만에 영화를 선보이는 소감이었다. 이번 영화는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포화속으로’ 이후 특별 출연을 제외하면 4년 만에 처음 찍게 된 작품.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분들이) 시간을 내서 약속을 잡고 일정한 금액 지불한 다음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만드는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선택할 때 더 신중해지네요. 예전에는 그냥 찍으면 되겠지 했는데 이제는 안 그런 거 같아요.”
차승원이 주연을 맡은 ‘하이힐’은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긴 채 살아온 강력계 형사 지욱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이야기. 일명 ‘감성 느와르’라 부를 수 있는 장르다. 차승원이 이번 영화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출자이자 오랜 친구 장진 감독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장진을 무수하게 봐왔는데 그 사람을 가만히 보면 여성적인 선이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잘 만들겠다는 믿음이 생겼죠. 어쩌면 이 사람 역시 나에게서 그런(여성적인) 걸 발견했겠죠. 그렇다고 성향이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 마시고요.(웃음)사람은 여성과 남성적인 면을 공유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게 더 부각되는 사람도 있고 감추면서 사는 사람도 있고 전혀 없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고요. 여자 안에도, 남자 안에도 다른 성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여장을 하는 것은 힘들었다. 분장을 하는 데 들이는 노력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때문에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도 있는 짙고 검은 눈썹을 얇게 밀었다. 거울을 볼 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혹 스스로 예쁘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끔 그렇게 느꼈어요. 그런 건 있어요. 처음 화장했을 때 그 역(일종의 트렌스젠더)을 하니까 아무래도 주변에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날 예쁘게 봐 주는 거예요. 연기니까 그걸 못 견디면 안 될 거 같았어요.(웃음) 사실 비주얼 보다는 여성스런 태에 중점을 많이 두려고 했어요.”
여장 뿐 아니라 이 영화에서는 액션 역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장진 감독은 앞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차승원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다”라고 차승원과의 작업에서 얻었던 고통(?)을 토로한 적이 있다. 차승원이 계속 액션 신을 다시 찍자고 해 힘이 들었다는 것.
“처음에는 액션신이 많아요. 힘들었죠. 장진 감독은 액션을 찍어 본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하면 될 거 같은데 안 될 때가 있어요. 연습을 하고 찍다 보니 감독도 힘들고 저도 힘들었어요.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오케이’도 금방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화를 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죠. (제가) 감독은 아니지만 오랜 친구이자 동료로서 우리가 처음 약속했던 대로 찍을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고 했죠. 초반에는 트러블이 있었지만 마지막엔 자기가 더 (열심히)하던데요?(웃음)”
차승원은 영화 속 등장하는 액션 신을 모두 대역 없이 소화했다. 열정도 열정이지만 “나만큼 키가 큰 사람이 없었다”는 게 대역을 쓸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때문에 그는 액션 신을 촬영하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첫 장면이었는데 그게 아마 12대 1로였던가, 싸워야하는 장면이었을 거예요. 무릎이 돌아갔어요. 대역을 써야하는 장면인데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 없더라고.(웃음) 무술 팀보다 제가 더 잘해서 그냥 찍은 적도 있고. 무술 팀이 워낙 사람들이 순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고 그래서 그 친구들 때문에 영화가 잘 나왔죠. 그 친구들도 부상을 많이 당했어요. 자기 분량도 아닌데 아침 일찍 와서 합을 맞춰주고, 고생을 많이 했죠.”
워낙 남성스러운 차승원이라 여장한 모습이 쉽게 상상이가는 것은 아니다. 혹시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희화되지는 않았을까. 이 같은 우려에 차승원은 오히려 “장진과 내가 함께 하는데 그런(웃음이 나는) 부분이 없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간에 그럴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영화의 끝에 가면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장진과 제가 있는데 그런 게 없겠어요? 희화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그런 것이 특정한 성향의 편에 선 건 아니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한 사람의 쓸쓸함 이런 걸 담아냈어요. 영화에서 트렌스젠더라는 것은 소재에 불과하죠. 형사 역시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흥행에 대한 기대를 물었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흥행이 되면 좋겠어요. 흥행이 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져요. 좋아하는 장진이란 사람과 좋아하는 영화를 또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내 친구니까.(웃음) 보람도 느낄 것이고 흥행이 되면 더 좋고요. ‘국경의 남쪽’이란 영화를 했었는데 그 때 안판석 감독님과 굉장히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에 남는 영화는 되게 오래가요. ‘시티홀’이란 드라마도 마지막 방송 시청률이 19 점 몇 퍼센트가 나왔어요. 그렇지만 그 드라마가 제 인생의 드라마에요. 흥행 여부 떠나서 남기 때문이죠. 이 영하는 그렇게 찍었어요. 마음에 남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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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