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천적' 히메네스 92km 느린공으로 잡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4.05.30 21: 56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타자 루이스 히메네스는 '곰 사냥꾼'이다. 올해 홈런 11개 가운데 두산전에서만 5개를 기록하고 있다. 두산 투수만 만나면 펄펄 날았던 히메네스를 잡아낸 건 150km 강속구도, 140km 예리한 슬라이더도 아닌 90km를 간신히 넘긴 커브였다.
히메네스는 30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전에 4번 지명타자로 나섰다. 4회 히메네스는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의 151km 몸쪽 높은 빠른공을 잡아당겨 비거리 140m짜리 초대형 솔로홈런을 때렸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두산 우익수 민병헌은 타구를 쫓지도, 바라보지도 않았다.
롯데는 히메네스 홈런포 외에는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두산에 계속 끌려갔다. 두산이 4-1로 앞선 8회초, 롯데는 2사 2루에 히메네스 앞에 주자를 갖다 놨다. 타격감이 좋은 히메네스가 타점 하나만 올려도 경기 막판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었다.

히메네스에 앞서 두산은 손아섭을 상대하기 위해 좌완 이현승을 올렸다. 1사 2루에서 이현승은 손아섭을 루킹삼진으로 꼼짝도 못하게 하고 돌려세우고 히메네스와 상대했다.
두산을 상대로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던 히메네스와의 승부, 이현승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정면승부는 피하면서 계속해서 유인구로 히메네스의 방망이를 유도했다. 1스트라이크에서는 갑자기 91km짜리 느린 커브를 던져 히메네스를 당황하게 했지만 그의 방망이는 나오지 않아 볼로 선언됐다.
볼카운트 2볼 2스트라이크, 이현승은 다시 결정구로 앞서 던진 느린 커브를 꺼내들었다. 이현승의 공은 마치 '아리랑볼'처럼 큰 낙차를 그리며 포수 미트로 날아갔다. 순간 완벽하게 허를 찔린 히메네스는 공을 툭 갖다댔고 결국 포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났다. 올 시즌 이현승은 100km를 넘는 슬로커브를 몇 차례 던지기는 했지만 이처럼 느린 공은 공개하지 않았었다.
히메네스는 허탈한 듯 웃으면서 더그아웃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입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머리를 내려치며 자책했다. 히메네스를 상대로 90km를 간신히 넘는 느린 공을 던진 이현승의 담력과 승부수가 돋보인 장면, 투구의 핵심은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라는 야구 격언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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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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