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다 더 무서운 두산의 ‘시스템 타선’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05.31 06: 02

5월에 두산 베어스 타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매일 새로운 놀라움을 주고 있는 것이 두산의 타선이다.
민병헌은 전통적인 1번타자 유형은 아니지만, 리그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1번이다. 하위타선에 있는 타자가 출루할 경우 민병헌은 3번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스스로도 말했을 만큼 볼넷으로 투수를 괴롭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볼넷 이상의 장타로 투수들을 힘들게 만든다. 허리가 좋지 않아 도루를 자제했지만 최근 3경기에서는 2번 시도해 모두 성공시켜 투수들의 고민이 더 늘었다.
오재원은 명실상부 최고의 2번이다. 출루율(.468) 2위, 도루(16개) 5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도루가 5위인 것은 타선 전체가 터져 반드시 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도루 성공률 94.1%로 순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중심타선은 정확도와 파워를 모두 갖췄다. 김현수와 호르헤 칸투는 적극적인 타격으로 타점을 생산한다. 특히 칸투는 자신의 홈런 11개 중 6개를 1~3회에 홈런을 몰아쳐 기선제압형 4번타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작은 부상과 감기몸살 등으로 이번 시즌 5경기에 결장했지만, 영양가는 만점이다.
이들이 불러들이지 못한 주자는 홍성흔과 양의지가 쓸어담는다. 득점권 타율이 .367에 달하는 홍성흔은 홈런(12개)도 공동 4위로 팀 내 최고의 토종 거포다.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양의지는 홍성흔 이상의 득점권 타율(.407)로 중심타선과 하위타선을 잇는 알짜배기 타자다.
하위타선은 장타만 적을 뿐, 절대 만만하지 않다. 주전 중 가장 타율이 낮은 이원석의 타율이 .276이다. 어느덧 3할타자(.318)로 올라선 김재호는 팀 배팅을 앞세우면서도 출루율이 .423로 높다. 정수빈도 최근 3경기에서 타격감을 끌어올려 8안타를 몰아쳐 타율이 .296으로 회복됐다.
두산 타선이 무서운 것은 개개인의 성적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톱니바퀴 같은 짜임새다. 하위타선에서 출발한 이닝도 두산은 찬스로 만들어낸다. 1번인 민병헌은 찬스에서 강하고 장타력이 있어 득점권에서 3번과 같은 효과를 낸다. 9번 정수빈은 발이 빨라 1번의 느낌이 난다.
하위타선에서 상위타선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핵이 되는 선수는 김재호다. 김재호는 2루에 주자가 있을 때 의식적으로 1루와 2루 사이로 타구를 보내 주자를 3루에 놓을 줄 알고, 나쁜 공에는 방망이를 내지 않는다. 끈질긴 승부로 상위타선을 만나기 전에 투수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전원이 3할이며 31홈런을 합작한 중심타선을 거치면 금방 다시 타순이 한 바퀴 돈다. 투수들은 민병헌으로 시작되는 악몽 같은 타선을 다시 만나야 한다. 만만치 않은 타자들이 줄 지어 있을 때 ‘산 넘어 산’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두산에게는 이런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두산 타선 자체가 끝이 어딘지 모를 하나의 거대한 산이다. 각기 다른 9가지 스타일의 타자들이 이뤄내는 하모니가 완성한 두산의 ‘시스템 타선’은 토종 타자 5명이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던 2010년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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