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는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와 같은 느낌이다. 채병룡(32, SK)이 부상 악몽에 시달린 SK의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하게 지키며 위기 탈출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SK의 올 시즌 선발 로테이션은 기대가 컸다. 에이스 김광현이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었고 두 명의 외국인 투수(조조 레이예스, 로스 울프)도 나름대로의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지난 시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시즌 출발이 썩 좋지 못했던 윤희상 채병룡도 시즌을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부상에 고전했다. 울프는 전완근 부상으로 한 달 넘게 선발 로테이션을 걸렀고 윤희상은 두 번의 불운 끝에 결국 전반기를 접었다.
한 자리도 아닌, 두 자리나 구멍이 뚫린 SK의 선발진은 표류했다. 5월 한 달 동안 단 6번의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에 그쳤다. 선두 삼성(15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리그 최하위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묵묵히 자기 몫을 한 선수가 있었다. 에이스 김광현과 채병룡이었다. 특히 외국인 투수들이 제 몫을 못한 가운데 채병룡이 분투한 것은 팀 마운드 운영에 여유를 제공했다.

사실 채병룡의 성적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11경기(선발 10경기)에서 4승5패 평균자책점 4.94를 기록했다. 승운이 다소 없었던 점은 있지만 스스로도 아주 만족스러워 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마운드를 지켰다. 단 한 번도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이 없었다. SK 다른 선발 투수들의 기록에는 없는 차이점이다.
채병룡은 올 시즌 선발 10경기에서 모두 5이닝 이상을 던졌고 절반에 가까운 네 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경기 내용에서 고전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책임감을 가지고 던졌다. 불펜 투수들의 소모가 많았던 SK 마운드에서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특히 31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자신의 올 시즌 최다 이닝인 7⅔이닝 무실점 호투로 개인의 승리와 불펜 체력 안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았다. 최근 다소 부진했던 흐름도 돌려놓는 등 여러모로 기분이 좋은 승리였다.
지난해 예상치 못한 부진을 겪은 채병룡은 올 시즌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준비해 온 투수였다. 시즌 출발은 다른 선발 투수들에 비해 덜 주목받는 5선발이었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에이스 못지않은 책임감으로 던지고 있다. 2007년(11승)과 2008년(10승) 기록했던 두 자릿수 승수 복귀도 기대를 걸 만하다. 묵묵하게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지금의 모습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목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