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음악에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피니트의 앨범을 듣는 건 꽤 신기한 일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90년대 낭만적인 청춘 영화 속으로 들어간 느낌.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그룹의 음악이라는 부연이 붙지 않으면, 몇번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런데도 촌스럽지 않은 건, 더 신기한 일.
이는 유희열, 김동률 등의 매니저를 거쳐 아이돌 그룹 제작에 나선 울림 엔터테인먼트 이중엽 대표의 경력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는 아이돌 음악도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며, 리얼 사운드와 로맨틱한 가사,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뚝심있는' 노선은 차별화에 성공하며 인피니트를 스타덤에 올려놨다.
1993년 '훈남' 매니저로 일을 시작해 20년 경력을 쌓아온 그는 가요계서 가장 젊고, 성공한 제작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뮤지션의 매니저에서 아이돌 제작자로 변신, 제1호 칼군무 그룹을 만들고, SM C&C와 합병으로 레이블 흐름의 제1호를 기록한 그의 행보에는 '최초'가 자주 따라붙는다. 남이 하는 건 하기 싫다는 '반골 기질' 다분한 그는 인터뷰 내내 너무나 유쾌하고 솔직해서 기자가 오히려 '톤 다운' 시켜야 할 정도였다.

# 아이돌 음악도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
OSEN(이하 O) - 인피니트 이번 앨범명이 '시즌2'라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이중엽 대표(이하 L) -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고 해야 하나. 회사도, 가수도, 음악도 모두 2막을 맞는다고 봤어요. 월드투어까지 다 마친 상태에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 그게 중요한 시점이죠.
O - 어떤 방향일까요?
L - 새로운 도전이 많죠. 중국도 있고, 미국도 있지만 국내에서 좀 더 자리매김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죠. 후배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그룹이 돼야 할 때이기도 하고요.
O - 제작자와 프로듀서의 개념은 가끔 중첩되는 것 같아요.
L - 저도 반반 정도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제작자는 예산을 짜고,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고심을 하죠. 프로듀서는 그야말로 음악의 방향과 콘셉트를 잡는 거고.
O - 어떤 게 더 적성에 맞으세요?
L - 둘 다 재밌는 거 같아요. 그런데 앨범을 만드는 것도 재밌는 일이지만 그 앨범을 대중에 어떻게 알리고, 어떻게 깜짝 놀래키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뒤통수 치고(웃음). 이런 것들이 재밌는 거 같아요.
O - 인피니트 2집을 예로 들어볼까요? 대표님의 역할은 뭐였을까요.
L - 나온 곡들에 대해서 어떻게 수정이 될거냐 논의를 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짜죠. 이 앨범에 타이틀곡은 이 세상에 없는 로맨티스트를 얘기하자. 이제는 없는, 그러나 한번은 꿈꾸는 그런 로맨티스트를 생각 하자, 그런 구도를 잡았어요.
O - 인피니트는 확실히 다른 색깔이 있어요.
L - 우리는 처음부터 록을 기반으로 멜로디 라인이 있는 음악을 했어요. 그 차별화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요즘 다른 가수들한테서도 그런 경향이 많아진 것 같고요. 다만 아쉬운 건 후크송보다 어렵다보니, 음악을 이해시키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하는 거 같아요.
O - 그래서 더 로맨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L - 노래는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댄스곡이라도 감성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일단은 제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느냐를 보죠.
O - 아, 대표님 감성부터요?(웃음)
L - 네. '내꺼하자'도 사실 되게 슬픈 감성이에요. 여자는 딴 데 보고 있는데 남자 혼자 '내꺼하자'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팬들이 집착돌이라고도 하는데, 이번 '라스트 로미오'는 그런 점에서 집착의 끝이죠. 너밖에 안보인다며 독배라도 마시겠다고 하잖아요.(웃음)
O - 요즘은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썸'이 대세 아닌가요.(웃음)
L -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같은 노래도 있어야죠. 제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연애, 일 전부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좋아하면 끝까지 가고마는.
O - 보통 작곡가들은 제작자들이 얼토당토 않은 걸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힘들어하기도 하던데, 울림과 스윗튠의 관계는 어때요?
L - 스윗튠이라는 집단 자체가 제 의견을 많이 수용해주는 분위기예요. 아주 예전에 만났는데,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 잘 맞았어요. 내가 두루뭉슬하게 얘기해도 캐치하는 게 빠르고요. 스윗튠과 일하는 건 굉장히 편해요.
O - 그러고보니 대세를 휩쓰는 다른 작곡가랑은 안했었네요?
L - 하고 싶기도 했었죠. 그런데 그들은 이미 올인하는 팀이 있었어요. 거기 들어가봤자 나는 2~3등일 거잖아요. 저는 저한테 올인할 수 있는 작곡가가 필요했죠. 또 제가 당시 워낙 어려워서 그렇게 큰 돈을 주고 인기 작곡가의 곡을 받을 수는 없었어요.(웃음)
# SM C&C와 합병, 한단계 더 성장 기대
O - 울림으로서도 시즌2인 게, SM C&C와의 합병 후 인피니트의 첫 컴백이죠. 많이 달라졌나요?
L - 인피니트로서 달라진 게 있다면 글로벌한 유통 체계나 홍보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 글로벌하게 갈 수 있는 계기는 된 것 같아요. 작년 3월부터 얘기가 오간 건데요. 처음에 사실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가 이게 한계가 아닌가, 내가 멤버들을 키울 수 있는 한계가 여기는 아닌가. 되게 고민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하다가 SM C&C하고의 합병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진 거죠. 다른 회사도 아니고 SM이라면 한 단계 성장시켜주지 않을까 기대했죠.
O - 실제로 효과가 있던가요.
L - 작은 회사로서 갖고 있던 설움은 많이 해소되죠.(웃음) 아무래도 일적으로 편해진 건 있어요. 해외 네트워크나 커뮤니케이션이 좀 더 쉬워졌고요. 물론 서로 적응하는 과정도 필요하죠.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데에는 3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예상해요.
O - 울림 이후로 레이블화가 굉장히 많아졌는데, 어떻게 보세요.
L - K-POP이 예전처럼 국내에만 한정돼있다면 모르겠지만 점점 글로벌하게 나가고 있잖아요.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게 됐고요. 사실 외국 한번 나가도 항공 체제비가 얼마예요.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아티스트들이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봐요.

# 인피니트, 열정을 봤다
O - 1992년 부산에서 상경해 이승환의 공연 스태프로 일하다 매니저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던데요.
L - 처음 한 1년쯤 하다 그만뒀었어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갔었죠.
O - 뭘 전공하셨어요?
L - 중국어학과였는데, 중국어는 못해요.(웃음)
O - 그런데 어떻게 다시 돌아오셨나요.
L - 군제대 후에 IMF가 왔어요. 정말 알바 자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때 제가 하루에 영화를 5편씩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었어요. 우연히 배우 오디션이 있어서 서울로 왔죠. 카메라 오디션에서 떨어져서(웃음) 다시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 인피니트 멤버들을 보면, 내가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연예인이라는 게 정말 힘드니까.
O - 울림의 대표가 된 건 언제였어요?
L - 2003년이었어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제작을 하고 싶었는데, 첫 제작이 서른살 때였죠. 처음 나온 앨범이 에픽하이 1집이었어요. 대중적으론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더에서는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도 김동률 앨범이 잘 됐기 때문에 큰 굴곡 없이 잘 버틸 수 있었어요.
O - 그러네요.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 같아요.
L - 어렸기 때문에 잘 모르고, 아우를 줄 모르고 그랬어요. 에픽하이가 회사에서 나간 게 어떻게 보면 좋은 계기였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인피니트를 만들었거든요.(웃음) 김동률씨도 제게 정말 고마운 사람인 게, 울림이라는 이름을 그가 지어줬어요. 아이돌을 제작하면 잘 할 것 같다고 조언해준 것도 그였죠.
O - 그런데 신기해요. 아이돌 경력이 전혀 없는 뮤지션 회사였는데, 멤버들은 뭘 믿고 연습생으로 들어온 거죠?(웃음)
L - 글쎄요. 그건 멤버들한테 물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웃음) 우현이는 TV를 보다가 발견했어요. 그 친구가 일반인으로 어디 나온 적이 있는데 끼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고, 성규는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직원이 그 커피숍 사장으로부터 추천받았죠.(웃음)
O - 인피니트 데뷔곡의 뮤직비디오는 정말 특이했어요.(웃음)
L - 그게 나름 설정의 시초인데.(웃음) 보면 성열이는 순간이동하고요. 멤버들이 각기 다른 이동법을 구사해요. 능력이 다른 거지.(웃음) 황수아 감독의 그 특이한 감성이 좋았어요. 저도 홍콩 영화를 좋아했다 보니 그때 감성이 남아있어요. 기술적으론 모르지만 어떤 영상을 보든 좋고 싫고가 나오는 거죠. 그게 뮤직비디오에 많이 반영돼요.
O - 그거 말고도, 특이한 뮤직비디오가 많았어요. 휴지가 막 날아다니는 것도 있었고.
L - '나씽스 오버(Nothing's over)' 뮤비였죠. 제 개인적으로는 그게 신의 한수였다고 봐요. 적은 돈으로 소품도 많이 못썼는데, 잘 나왔어요.
O - 멤버들은 어떤 걸 가장 중점에 두고 오디션을 보신 거예요?
L - 열정을 봤죠. 정말 하고 싶은건지 그냥 화려함을 좇는건지, 보면 알수 있어요. 눈빛 같은 게 달라요.
O - 그런 절박함은 금방 변하기도 할텐데.
L - 안변하게 하는 게 제작자의 역할이기도 하죠.

# 인피니트는 7명이 완벽한 그림
O - 시행착오도 많으셨겠어요.
L - 그럼요. 마이크는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모르고, 코디 비용은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갈까 궁금하기도 하고.(웃음)
O - 고아원에 비유도 했던데.(웃음)
L - 처음 아이돌을 제작하는 분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애들을 다 먹여살려야 돼?(웃음) 거기에 충격을 받죠. 저도 처음엔 합숙 정도는 알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하니 많이 힘들었어요.
O - 인피니트는 유독 팬들과 소속사가 더 끈끈한 것처럼 보여요.
L - 우리는 멤버 개인 팬이 별로 없어요. 어떤 개인 활동을 하던 그룹의 팬들이 모두 응원해주는 분위기죠.
O - 다른 팬덤은 안그렇잖아요.
L - 우리도 신기해요. 사실 데뷔 초기에 엘한테 많은 요청이 있었어요. 드라마 쪽에서. 제작자 형들도 그랬어요. 우선 한 명이 떠야 팀이 산다. 그런데 전 그게 이해가 안됐어요. 팀 전체가 뜨는 그룹도 분명 있었잖아요. 쉬운 방법으로 멤버 하나에 의존하긴 싫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개별 활동을 자제시키고 스케줄을 골고루 하려고 했어요.
O - 엘은 싫지 않았을까요?
L - 이해를 해줬죠. '너만 뜨면 네가 인피니트가 된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고요.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당사자한테도 힘들죠. 만약 안좋은 일이 생기면 또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데. 크게 불만은 없는 거 같아요. 자기들끼리는 있는지 모르겠지만.(웃음) 최대한 분배 시키려고 노력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오래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인피니트라는 팀은 7명이 모여서 완벽한 그림이라고 보니까요.
O - 사실 인피니트도 아이돌로서는 후발주자였잖아요. 처음부터 성공에 확신이 있었어요?
L - 안된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어요. 크게 눈엔 안띄지만 그래프는 쭉 올라오고 있다고 보고 있었죠. '나씽스 오버' 활동 때였는데요. 5월5일 수원에서의 행사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그 체육관에 인피니트 팬이 꽉 찬 거예요. "우와! 됐다!" 정말 신났었죠.
O - 그렇게 반응이 오면 회사 매출도 즉각 달라지나요?
L - 그건 '내꺼하자' 끝나고.
# 대중 취향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O - 사실 제작자들 사이에는 '내꺼하자' 사건(?)이 유명해요. 오랜 기간 투자 끝에 소속사가 매우 어려웠는데 극적으로 살아난 케이스였잖아요. 좀 부진한 제작자들은 "내게도 '내꺼하자'가 온다"고 위안 삼기도 하던데.
L - 그냥 온 건 아니고요.(웃음) 사실은 그때 끊임없이 밀어부쳤던 상황이에요. 한번도 공백기가 없었어요. 음원을 끊이지 않고 낸다는 게 상당한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잖아요. 힘들었죠.
색깔도 꾸준히 바꿨었어요. 처음엔 펑키하게, 그 다음엔 샤방하게, 그 다음엔 카리스마를, 그 다음엔 다시 샤방하게, 그리고 어쿠스틱까지 보여준 다음에 '내꺼하자'가 나온 거예요. 미리 구체적으로 짠 건 아니지만, 그때 그때 타이밍에 맞춰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온 거예요. 그 결과물이 '내꺼하자'에서 터진 거라고 봐요. 물론 노래도 정말 좋지만, 미리 받아놓은 이 곡을 시기 적절하게 타이밍을 봐서 선보인 전략도 있었죠.
O - 그런데 그 전략이라는 게 다 감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L - 그렇죠. 그 누구도 정답을 몰라요. 성공하면 맞는 거고 실패하면 틀린 거죠. 그래서 전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우선시했어요.
O - 그래도 대중의 취향을 많이 신경쓰셔야 할텐데.
L - 스윗튠이랑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우리 감각이 8~90년대 감성인데 요즘 아이들한텐 어떨까. 우리가 들으면 올드한데, 아이들한텐 신선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결론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따라와줄 거라는 거예요. 사실 되게 무식하게 끌고 오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저 제가 예전 스타일의 아이돌 음악을 안좋아해서 그렇게 한 건데, 그래서 후크송을 안했던 건데 결과적으론 그게 틈새를 공략한 셈이죠. 절대 계산한 건 아니었어요. 그러고보면 우리는 아이돌 전용 구호도 없어요. 그냥 인피니트입니다, 그러잖아요.(웃음)
O - 가장 큰 고민은 뭐예요? 제작자로서.
L - 아이들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가장 걱정인 게 아이돌의 인기 지속 기간이 보통 5년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롱런을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죠. 아이돌이 샤방샤방한 오빠에서 어떻게 남자가 되고, 그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줘야 할까. 저는 그들이 평생 이 일로 먹고 살게 해주고 싶거든요.
O - 해답은 나왔어요?
L - 진행하고 있어요. 엔터테인먼트가 되게 계획적으로 움직이는거 같지만, 매번 계획이 움직이잖아요. 저도 멤버별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에요.
O - 다음 프로젝트는 걸그룹인가요? 꽤 오래전부터 얘기가 나왔는데.
L - 3년가량 사전 프로모션을 한 셈이죠. 그동안 너무 많은 걸그룹이 나와서, 차별화 시킬 전략이 필요했어요.
O - 전략은 찾았나요?
L - 지금은 좀 촉이 왔어요. '매우 곧' 나온다고 보심 될 듯해요. 남자팀도 준비 중이고요.
# 아무도 안해본 걸 하고 싶다

O - 요즘 가요계선 매니저 출신 제작자가 많아져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L - 공감하지만 그런 토양이 만들어질진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A&R 개념이 없었어요. 매니저가 곡을 수집하고 대표한테 허락받고, 홍보, 마케팅까지 다 했죠. 그런데 그런 부분이 다 시스템화되면서 매니저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었어요. 어느새 매니저는 그냥 홍보하는 사람이 된거죠. 매니저의 가장 큰 역할은 아티스트를 관리하는 거고 그 다음이 홍보를 하는건데 마치 홍보가 최우선인양 되는 게 안타까워요. 그래서 앞으로는 좀 쉽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매니저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죠.
O - 그래서인지 제작에 욕심을 내는 매니저도 예전만큼 많지 않은 것 같아요.
L - 안타깝죠. 리스크도 너무 많아졌으니까. 벌써 머니게임이 됐고 브랜드 싸움이 돼버렸거든요. 그래도 누군가는 나오겠죠.
O - 제작자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주실까요. 훈훈하게.
L -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면 안될 거 같아요. 화려함만 보고 들어왔다 그만 두는 애들이 많죠. 나도 그만뒀었고요. 진짜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녹음실에 열몇시간씩 있고 그랬거든요. 똑같은 음악만 몇십번 듣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지겨운데요. 그걸 완곡도 아니고 구절마다 끊어가며 들어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음악을 듣는 귀가 생겼던 것 같아요. 또 형들을 계속 뒷바라지 하다보니까 어떻게 케어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런 노하우도 생기죠.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 힘든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나중에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느냐를 좌우해요.
사실 여기만큼 창업을 쉽게 할 수 있고, 창업해서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몇 개나 될까요. 물론 어떨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같긴 해요. 사람을 끌고 가야 되고 기분 맞춰줘야 하고 관계 맺어야 되고. 그래도 잘되면 연예인보다 좋은 직업이에요.(웃음)
매니저도 생각하기 나름이죠. 가수가 물 달라고 할 때 주면 부하직원이지만, '저 사람이 물이 필요하구나'하고 생각해서 미리 주면 매니저거든요. 마인드의 문제예요.
O - 다른 제작자에 비해 특별히 더 노력하고 있는 것도 있을까요? 특이한 시도를 많이 하셨는데.
L - 제가 약간 반골 기질이 있어서(웃음) 남들이 안한 걸 좋아해요. 아무도 안했던 것. 인피니트가 아이돌이면서도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던 것, 소극장 공연을 일주일씩 한 것. 인스트루멘털 앨범을 낸 것. 굉장히 재미있어요. 팬분들 의견 중에서도 기발한 게 많아요. 그래서 매일 30분 이상씩 모니터하는 편이에요.
O -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데요.
L - 제가 좋아하는 영상,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인피니트로 다 썼다고 봐야죠. 그래서 옛날만큼 기발하진 않은 거 같아요.(웃음) 그래서 제 비중을 점점 줄이고, A&R이나 직원의 비중을 높이고 있죠. 나도 사람인데 모든 걸 좋아할 순 없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 외의 것으로도 승부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고. 그걸 다 안고 갈 순 없거든요. 그게 시스템인거죠.
O - 지금 울림의 시스템은 어느 정도라고 자평하세요?
L - 어느 정도, 한두군데 빼고는 대체적으로 잘 되고 있다고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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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