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의 마술사’ 김정권 감독이 중국 대륙을 노크한다. 13억 플러스 알파를 자랑하는 중국 잠재 관객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영화계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김정권 감독이 중국 자본의 투자로 중국 영화를 제작한다.
김정권 감독은 2000년 영화 ‘동감’을 시작으로 2003년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8년 ‘바보’ ‘그 남자의 책 198쪽’, 2012년 ‘설해’까지 감수성 짙은 멜로 영화를 주로 연출해 왔다. (‘설해’는 올해 겨울 개봉 예정이다.)
영화 제목만 들어도 옛날 일기장이 떠오르는 영화를 찍어온 김정권 감독이 다음 작품은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예술 기관의 투자를 받는다. 한국 영화시장이 말초적인 자극을 좇는 사이 중국 문화계가 인간 본성의 ‘순수’를 추구하는 한국의 젊은 영화 감독에 주목한 결과다.

제목은 ‘특별한 휴가’(가제)다. 젊어서 온갖 고생을 다해가며 렌터카 회사를 일군 중국의 한 기업인이 있다. 자수성가의 전형적인 모델인 이 노인은 그러나 젊은 시절 너무 고생을 한 탓인지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 몸 속 장기 한 곳이 고장이 난 것.
노인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장기 이식만이 방법이다. 때마침 장기를 기증(엄밀한 의미로는 매매)하겠다는 젊은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이 노인은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이지만 선뜻 자신의 장기를 떼내 주겠다는 젊은이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결국 노인은 신분을 속인 채 한국에 있는 젊은 기증자를 찾아 나선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세대도 다른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어 간다.
이 같은 줄거리를 가진 영화 ‘특별한 휴가’는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은 한 중국 투자그룹의 눈에 띄었다. 정작 한국 영화계에서는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깊은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아직은 순수성을 잃지 않은 중국은 달랐다.
김정권 감독의 영화에 투자를 결정한 주인공은 중국 ‘동방연예그룹’의 고신 회장이다. 동방연예그룹은 중국 최대의 국영 공연제작사이지만 최근에는 한중 합작 영화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JYP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JYP픽처스와 한중합작영화 ‘네 손을 잡고 싶어 I wanna hold your hand’(감독 황수아)를 찍기로 한 바로 그 제작사다.
‘네 손을 잡고 싶어’는 춤과 노래가 있는 음악 영화이고 ‘특별한 휴가’는 서정적인 로드무비다.
중국 영화 시장 진출을 결정한 김정권 감독은 OSE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5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중국에서는 신인이다. 해외에 진출하는 프로스포츠 선수처럼 ‘신인’의 자세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한 휴가’는 김정권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의 영화 정책에 따라 중국인 배우가 2/3이상 캐스팅 돼야 하고 영화 촬영 스태프 또한 2/3 이상이 중국인이어야 하는 사실상의 중국 영화다. 물론 핵심 스태프, 즉 프로듀서를 비롯해 촬영 조명 음악 미술 편집 CG 감독은 한국인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중국인이라는 낯선 무대, 낯선 환경과의 융화가 중요한 대목이다. 김 감독은 “서로 다른 환경을 배려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려운 조건이다. 중국 쪽에도 같은 것을 요청하겠지만 현장에서는 ‘배려’를 가장 크게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중국 영화 시장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분석했다. “중국의 초대형 포털사이트 웨이보에서 내 영화 ‘바보’에 매긴 평점이 9.3이다. 우리나라 포털사이트의 평점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나라는 다르지만 정서적으로는 충분히 통한다고 생각한다.”
무대가 달라지는 만큼 영화의 분위기에도 새로운 변화를 꾀한다. 김 감독의 기존 영화들이 애절한 멜로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색깔이 어두운 측면이 있었으나 ‘특별한 휴가’는 그렇지 않다. 밝고 유쾌한 색채가 상당 부분 가미 된다.
김정권 감독은 “중국 무대 진출을 계기로 영화 인생 2막이 열렸다고 본다. 뿌리는 멜로이지만 다양한 변화도 시도해 보고 싶다. 이왕 중국 무대를 노크한 김에 평소 좋아하던 액션이나 무협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야심을 드러냈다.

영화 ‘특별한 휴가’는 현재 배우 캐스팅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9월 서울 부산 인천에서 한국 분량을 찍고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과 랴오닝성에서 80% 분량을 촬영할 예정이다. 중국 최대 명절인 내년 춘절 주간에 중국 전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100c@osen.co.kr
맨 아래 사진은 ‘특별한 휴가’의 투자 계약 체결 후 찍은 기념 컷. 왼쪽부터 DOMA 픽처스 정광섭 대표, 동방연예그룹 고신 회장, 김정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