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에이스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는 확률적으로 대량 득점의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에이스를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더 좋은 승부일 수도 있다. 끈질김과 집중력으로 무장한 두산 타선의 김광현(26, SK) 공략법도 그랬다.
두산은 5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김광현에게 6이닝 고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김광현은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구위를 갖춘 투수다. 여기에 최근에는 많은 이닝을 던지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지친 불펜을 위해서다. 때문에 투구수도 110개 근처에 이르거나 이를 넘기는 일이 많았고 세 경기 연속 6⅔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에이스다운 면모였다.
4일 경기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한 두산으로서는 이런 김광현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이날 경기의 키 포인트였다. 하지만 김광현의 구위는 여전히 좋았다. 직구와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두산 타선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올 시즌 두산과의 2경기에서 2패 평균자책점 7.94로 부진했던 김광현이었지만 이날 경기는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김광현도 공격적으로 던졌고 두산 타선은 이에 크게 고전했다. 5회까지 안타는 딱 1개였다.

하지만 두산은 다른 측면에서 김광현을 야금야금 공략하고 있었다. 올 시즌 두산은 김광현 공략법을 가장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팀으로 손꼽힌다. 김광현의 승부수에 말려들지 않는 타자들의 참을성과 노림수가 돋보였다. 지난 2경기에서 김광현을 조기에 몰아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김광현에게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하면서 기회를 엿봤고 결국 김광현이 제풀에 무너지는 패턴이었다.
이날도 두산 타자들의 대처는 비슷했다. 김광현에게 끌려가는 듯 보였지만 이미 많은 공을 던지게 하고 있었다. 파울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날 두산은 김광현을 상대로 총 34개의 파울을 쳐냈다. 1회 6개, 2회 7개, 3회 10개, 4회 5개, 6회 6개의 파울타구를 만들어냈다. 김광현은 가장 좋은 직구와 슬라이더로 두산 타자들을 승부하고 있었는데 두산 타자들이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집중력을 과시하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김광현이 못 던진 것이 아닌, 두산 타자들의 집중력이 워낙 뛰어났다.
비교적 작은 총을 들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3회 장민석이 김광현을 상대로 6개의 파울을 걷어내며 11개의 공을 던지게 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여기에 홍성흔 김현수 칸투 등 큰 타구를 만들어내는 선수들도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좁히고 김광현을 상대했다. 그 결과 김광현의 투구수는 시나브로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구위대로라면 능히 6~7이닝을 던졌어야 했을 김광현이 5⅔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려갈 수 없었던 원인이었다.
이날 김광현은 전체 117개의 공을 던졌다. 전체 투구수의 파울 비율은 29.1%에 이르렀다. 이날 경기 전 김광현의 파울 비율은 14.7%였고 두산전에서는 16.2%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두산 타자들이 정말 끈질기게 김광현의 공을 골라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날 김광현의 구위를 고려하면 두산으로서는 최선의 성과였다. 다만 정작 김광현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린 이후 방망이가 침묵하며 2-4로 패배,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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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