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는 어떨까.
한국 축구는 지난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14년 브라질까지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는 아시아 최다이자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과 함께 세계 6개 나라만이 일군 대기록이다.
1954년 스위스 대회는 처음 밟는 꿈의 무대였지만 그 경험은 쓰라렸다. 아시아 예선서 '숙적' 일본을 누르고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른 한국은 2경기서 모두 대패를 당하며 2차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1958년 대회부터 1982년까지 7개 대회 연속 본선행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 1954년 스위스월드컵, 호된 신고식
첫 월드컵의 기억은 악몽이었다. 한국은 꿈의 무대를 밟은 16개 나라 중 아시아에서 유일한 국가였다. 개막일이었던 6월 16일 밤에야 겨우 현지에 도착한 한국은 선수단 전원이 함께 탈 비행기표를 구하기 힘들어 1진과 2진이 따로 출발, 일주일이나 걸려 스위스 땅에 도착했다.
헝가리, 서독, 터키와 함께 그룹 2조에 속한 한국은 시차적응은 커녕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헝가리, 터키와 맞붙어야 했다. 운명의 첫 경기. 17일 취리히 하르트룸 스타디움에서 열린 헝가리전서 0-9 대패의 쓴잔을 들이켰다. 전반 12분 만에 당시 세계 최고의 골잡이였던 페렝크 푸스카스에게 첫 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에만 4골을 내준 뒤 후반 5골을 더 허용했다. 첫 TV 중계가 됐던 월드컵이었기에 참패의 충격은 더했다.
한국은 사흘 후 20일 제네바에서 만난 터키전서 유종의 미를 노렸다. 하지만 경기 시작 10분 만에 수아트 마마트에게 첫 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에 4골, 후반에 3골을 헌납하며 0-7 대패를 면치 못했다. 같은 조의 서독이 우승, 헝가리가 준우승을 차지, 한국은 죽음의 조에서 그렇게 첫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 1958~1982년, 기나긴 좌절
두 번째 도전을 하기까지 무려 32년의 기나긴 세월이 걸렸다. 한국은 1958년 대회부터 1982년까지 7개 대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출전 신청서를 분실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탓에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예선에 출전조차 할 수 없었던 한국은 1962년 칠레 월드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6장의 본선 진출권이 있었지만 개최국 칠레, 전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제외하고 14장을 두고 경쟁했다. 본선길은 쉽지 않았다. FIFA는 아시아 지역의 기량이 낮다는 이유로 유럽 국가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했다. 한국은 일본을 꺾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가 폴란드를 따돌린 유고슬라비아와 만났다. 하지만 동유럽의 강호 유고슬라비아는 강했다. 베오그라드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원정 경기서 1-5로 완패했다. 효창구장에서 열린 홈경기서도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세계 수준과 격차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 때는 예선 출전을 포기했다. 개최국과 지난 대회 우승국 브라질이 빠진 14장의 본선 진출권 중 아시아는 0.5장을 배분받았다. 아프리카는 FIFA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한 그룹으로 묶어 유럽과 남미 위주의 월드컵을 지향하자 항의의 뜻으로 예선에 참가를 신청했던 15개국 모두가 월드컵 출전을 포기했다. 결국 한국을 비롯해 호주, 북한 3개국만이 남았다. 하지만 한국은 1963년부터 월드컵 예선을 치르기 직전까지 승승장구했던 북한과 경쟁을 피하고 싶어했다. 결국 월드컵 불참을 선언해 FIFA에 벌금 5000 달러를 내야 했다.
1970년 멕시코 대회와 1974년 서독 대회 때는 호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70년 대회 때는 아시아-오세아니아를 묶어 배당된 본선 진출 티켓은 1장이었다. 한국, 일본, 호주가 1그룹에 포함돼 더블리그를 통해 1위가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와 1차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돼 있었고 2그룹에는 이스라엘과 뉴질랜드가 속해 최종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당시 세계 정치 상황에 따른 조편성이었다. 한국은 첫 경기였던 일본과 경기에서 2-2로 비겼고 호주에 1-2로 패하고 말았다. 1무 1패를 안고 2차리그에 나선 한국은 일본이 호주와 1-1로 비기는 바람에 마지막 호주전을 이길 경우 재경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두고두고 화제가 됐던 임국찬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1-1로 비기고 말아 1승 2무 1패로 2승 2무의 호주에 뒤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내주고 말았다.
1974년 서독 대회 때도 또 다시 호주에 막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개최국(서독)과 지난 대회 우승팀(브라질)을 제외한 14장의 진출권을 놓고 치열한 혈전이 펼쳐졌다. 한국은 이번에도 오세아니아 국가들과 함께 예선을 치렀으나 전 대회와 달리 아시아-오세아니아에 한 장의 티켓이 주어졌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 포함됐다. 차범근의 등장으로 한국의 공격력은 배가 됐다. 1, 2차예선서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이스라엘을 상대하며 3승 2무를 기록한 한국은 최종예선서 다시 호주와 만났다. 그러나 호주와 1, 2차전을 모두 비기는 바람에 제3국인 홍콩에서 다시 대결해야 했다. 호주 원정경기에서 0-0으로 비겨 유리한 고지를 밟은 한국은 홈서 2-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해 비기고 말았다. 그러나 홍콩서 벌어진 최종전서 0-1로 패하며 호주에 월드컵 티켓을 내줬다.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때는 이란에 발목이 잡혔다. 처음으로 예선 참가국이 100개국을 넘어섰다(107개국).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22개국은 1장의 티켓을 놓고 사투를 벌였다. 이스라엘, 일본, 북한과 함께 2조에 속한 한국은 이스라엘, 일본에 각각 1승 1무를 거둬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북한은 기권했다. 최종예선에는 한국을 비롯해 이란, 쿠웨이트, 호주, 홍콩 5개국이 나섰다. 한국은 1차전서 홍콩에 1-0, 2차전서 이란과 0-0을 기록하며 1승 1무로 무난한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이란에 0-1로 진 호주에 1-2로 패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이란은 6승 2무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승점 14를 기록, 여유있게 본선 티켓을 따냈다. 한국은 쿠웨이트와 홈경기에서 1-0으로 이겼지만 호주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어 쿠웨이트, 이란 원정을 모두 2-2로 비기는 바람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982년 스페인 대회 때는 쿠웨이트에 져 최종예선행에도 실패했다. 본선 출전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에 배정된 티켓이 2장으로 늘어났다. 4개조 1위팀이 최종 예선을 거쳐 최종 본선에 오를 2개국을 가려내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한국은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태국과 함께 3조에 포함됐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워낙 강했다. 태국과 말레시아를 상대로 모두 10골을 뽑았고 실점은 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으로서는 무조건 쿠웨이트를 꺾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쿠웨이트 원정에서 0-2로 패한 뒤 최종 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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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 대회 참가 메달, 이승만 전 대통령과 스위스 월드컵 대표팀, 고 주영광 씨가 대회에 참가할 때 사용한 가방과 장비들(위로부터). / 1962년 월드컵 예선차 방한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1970년대 호주전서 차범근이 슛하는 장면, 1970년대 이란전, 1970년대 쿠웨이트전(위로부터). / 대한축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