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이태임은 대체 왜 나왔을까?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4.06.06 13: 48

느와르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의 위치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주로 어두운 뒷골목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는 탓에 그들의 주변부에 있는 여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다소 수동적인)팜므파탈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인상적인 조력자, 강력한 모티브로 활약하며 자신들만의 존재감을 빛냈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최근 개봉한 ‘우는 남자’ 속 김민희가 있고, 돌아보면 ‘달콤한 인생’ 신민아, ‘비열한 거리’ 이보영 등이 그 예다.
그런 면에서 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은 ‘황제를 위하여’(12일 개봉)는 여성 캐릭터 활용에 실패한 케이스다. 부산의 불법 도박판과 사채업계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이태임은 유일하게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지만 존재감은 미미하다. 아니,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는 부분이 단 하나 있다. ‘베드신’이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태임은 이 영화에서 오로지 ‘베드신’을 보여주는 데만 활용된 듯하다. 주인공 이환(이민기 분)은 보스인 상하(박성웅 분)를 따라간 룸살롱 ‘템테이션’에서 연수(이태임 분)를 보고 반한다. 그런데 카메라 앵글로 표현되는 이환의 시선이 조금 이상(?)하다. 그가 노골적으로 보는 것은 연수의 얼굴이 아닌 가슴이다. 연수를 보고 느끼는 이환의 감정이 순정이 아닌 욕망이란 것을 단번에 드러낸 장면으로 풀이된다.
연수의 주변을 맴돌던 이환은 그의 연인이 되고 곧 길고 노골적인 정사신이 두 세 차례 정도 등장한다. 그리고 난 후 연수의 역할은 특별히 없다. 부산의 큰 손이자 상하의 뒤를 봐주는 한득(김종구 분)과 묘연의 관계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주인공 이환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연수를 끝없이 원하던 이환의 마음도 시간이 지나자 희미해져 버리고 이태임은 그렇게 영화에서 사라진다.
오히려 '케미스트리'는 이환과 연수가 아닌, 이환과 상하 사이에서 발생한다. 두 남자 사이에서 오가는 진한 감정들 가운데 연수가 끼어들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연수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활용되지 않았다. 조금 더 잘 활용됐다면 매력적인 '팜므파탈' 혹은 진실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속 차마담, 연수를 그런 의미있는 존재로 만드는 데 관심 자체가 없었던 것 으로 보인다.
분명 배우의 입장에서도 안타까울만한 일이다. '황제를 위하여'를 연출한 박상준 감독은 이태임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 "여배우를 선택할 때 감독도 한 남자로 이성의 매력을 보고,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태임의 그런 매력적인 모습을 보고 영화의 연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이태임은 분명 매력적인 배우이자 여성이다. 그러나 그런 매력은 아무 의미없이 소모되고 말았다.
이를 감독의 탓만으로 돌릴수도 없다. 영화 곳곳에는 미미 하지만 이태임의 캐릭터를 '뭔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했던 시도들이 눈에 보이긴 한다. 남다른 삶을 사는 여자로서의 고뇌를 표현할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장면들 속에서 이태임의 연기는 평범하고 공허하다. 가능성을 조금 더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eujenej@osen.co.kr
'황제를 위하며'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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