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소재주의'를 넘은 진짜 이야기꾼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06.07 10: 14

장진 감독이 돌아왔다. 훨씬 차분하고 세련돼졌고 넓고 깊다. 배우 차승원과 6년만에 의기투합한 영화 '하이힐'.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고통 받는 한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흥미롭게 그려냈던 한국영화가 있었던가.
영화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로 결심한 순간 치명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강력계 형사 지욱의 이야기를 그렸다. 남자주인공 차승원, 그리고 여자주인공도 차승원. 소재에 대한 일부 관객의 선입견이 있을 수 있으나, 사실 '하이힐'은 배우의 연기나 액션, 코미디 등 대중 영화의 기호에 적합한 부분이 많다. 특히 차승원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영화에 대한 구매력으로 이어질 만 하다.
"왜 차승원이었나?"란 질문에 장 감독은 "외피적인 성향으로도 여성 쪽은 상관없었고, 강력한 마초가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둔탁하지 않고 기민해 보이고 날렵한 느낌이어야 했다. 또 강력계 형사라 막 어린 친구는 안 돼고 40대 정도 돼야 하는데, 사실 남자배우 중에 그렇게 많지는 않다"라고 대답했다. 차승원이어야만 했던 이유다. 

"액션물은 고생에 비해 덜 나올 때가 많은데, 그래도 고생한 만큼 잘 보여서 다행이에요. 드라마와도 잘 붙고. 관객들도 그렇고 그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 좋아요. 이 작품의 상업적 득실을 떠나서 차승원이 한 번 힘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너무 고맙죠. 이런 소재에 그가 붙어주니까. 차승원이 출연함으로써 이 영화가 대중영화로 안착할 수 있었어요."
세월이 흘렀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차승원에게 변했던 점은 없었냐는 말에 장 감독은 "차승원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고 내 오케이에도 분장을 지우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내 수준에서 끝나는 영화가 나왔을텐데, 차승원의 욕심과 끈기 때문에 훨씬 뭔가 더 나왔다. 원래도 악착같고 수동적이지 않은 배우인데, 놀란 것은 오히려 변해도 되는데 40대 중반이고 당연히 쉽게 가도 되는데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라며 변해도 될 법 한데 변하지 않아 더 놀라운 차승원에 감탄을 보냈다.
기자가 "이 작품을 보니 차승원이 다소 저평가된 배우였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말하자 장 감독은 "보통 작품 속에서 어우러지는 짝들이 함께 (배우에 대한)고평가를 만들어주는데, 차승원 같은 경우는 그런 게 크게 없었다. 흔히 누구를 평가 할 때 좋은 페어(배우나 감독)가 상당한 역할을 한다. 차승원의 진가는 점점 더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화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차승원의 뜻이 시나리오 초고에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당초 장 감독이 세운 설정은 지욱이 유부남이었는데,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차승원의 말에 장 감독 역시 적극적으로 수긍하며 지금의 지욱이 탄생했다. 
'충무로의 대표 이야기꾼'으로 불리지만, 어떻게 이런 얘기를 구상하게 됐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영화 '기막힌 사내들'부터 '킬러들의 수다', '간첩 리철진', '박수칠 때 떠나라', '아는 여자', '굿모닝 프레지던트',  '퀴즈왕', '로맨틱 헤븐' 등 일일히 다 나열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다. 하지만 '하이힐'은 블랙코미디 엇박자 유머가 강했던 전작들과 좀 맥을 달리하는 새로움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이야기가 단순히 소재주의를 넘어 상업영화, 휴머니즘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장진이기에 가능한 부분도 크다.
이야기의 시작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실제 지인의 경험담을 참고했다는 장 감독은 "맨 처음에 썼을 때 지인 트랜스젠더 분이 대부분 트랜스젠더가 된 분들은 처음에 동성애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더라. 물론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그걸 참고했다. 나도 모르게 남자가 좋아지고, 거기서 출발한다는 거다. 그런데 마치 트랜스젠더는 90% 동성애를 하면 여자가 된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다. 내 말이 아니라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한 말이다"라고 분명히 했다.
강력한 사내의 얼굴 차승원이 예뻐보인다. 자신을 찾기로 결심한 지욱이 곱게 풀 메이크업을 하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는 장면이 있는데, 순간 관객들에게도 작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실제 촬영에서도 정말 예뻤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글쎄, 그렇게 예쁘지는 않았다"라는 너스레 섞인 대답을 들려줬다. 조명, 분장 등 공들여 작업한 장면인 것은 분명하다. 환희와 슬픔이 공존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역 회상신은 영화의 감성을 담당한다. 장 감독은 "어린 시절 아픔을 겪었고 고통 속에 자란 사람의 지금의 고민이 관객의 동의를 얻어가는 장면이다. 그래서 아역들의 연기 중요했는데, 너무 잘해줬다"라고 설명했다. 성인배우들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새싹들의 연기가 아련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영화 속 지욱은 전설로 이름을 날릴 만큼 뛰어난 싸움 실력에 아무리 격한 싸움에서도 잘 다치지도 않아 '600만불의 사나이'라 불린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는 소머즈다. 그래서 원래 제목이 '소머즈 부인의 사랑'이기도 했던 '하이힐'. 50세 이상 감독이 충무로에 거의 전무함을 안타까워하며 "난 갯수로 승부 보는 스타일"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장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하이힐'이 또 다른 큰 점을 찍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 개봉 외에도 제 17회 인천아시안게임으로 개·폐막식 총 연출을 맡아 정신없이 바쁜 장 감독은 이번 공연에 대해 ""그건 연츌가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나라가 개최해야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라며 웃어보였다. 다음 작품은 조진웅, 김성균이 주연을 맡은 '우리는 형제입니다'이다. 장진 감독의 전성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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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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