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정도전’이 제시하는 리더의 조건
OSEN 오민희 기자
발행 2014.06.09 07: 17

“삼봉대감은 군주를 가리켜 천명의 대행자이고 종묘와 사직에 의지하여 돌아가는 곳이며, 자존과 신하와 백성이 우러르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집이 크고 식구가 많은데 어찌 일을 다 감당하겠습니까. 솜씨 좋은 집사에게 맡겨주는 편이 낫습니다.”
지난 8일 방송된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 이재훈) 44회에는 세자 이방석(박준목 분)과 이방원(안재모 분)이 정도전(조재현 분)의 조선경국전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조선경국전은 1394년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지어 올린 법전으로, 주나라 주례의 6전체제를 모델로 하고 중국의 역대 제도를 참조하여 조선 현실에 맞는 통치규범을 제시한 책. 강력한 중앙집권, 능력위주의 관리 선발, 병농일치의 국방과 경제. 조세 형평을 통한 민생안정과 국부의 증대 등 그의 선진적인 정치사상이 망라되어 있는 이 책은 후일 조선의 공식법전이 되는 경국대전의 모체가 되었다.

특히 조선경국전에는 재상이 통치실권을 갖는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담겨있어 이방원의 반발을 샀다. 이방원은 이성계(유동근 분)에게 “조선경국전은 왕권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입니다. 아바마마께서는 분하지도 않으십니까. 정도전은 대업이란 미명 아래 아바마마를 이용해 자신의 이상을 달성하려 한 것입니다“라며 조선경국전의 인쇄와 배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방원은 이방석과 중전 강씨(이일화 분)를 찾아 정도전은 왕권을 부정하는 자이니 세자의 훈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방석은 자신의 스승을 불손한 자로 매도하는 이방원에게 “삼봉대감은 군주를 가리켜 천명의 대행자이고 종묘와 사직에 의지하여 돌아가는 곳이며 자존과 신하와 백성이 우러르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라며 진정한 리더는 구태여 권력에 욕심내지 않고 사사로이 부를 쌓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군왕이 깨끗해지면 관리들, 나아가 백성들까지 다 깨끗해진다는 것.
이어 이방석은 왕권이 미약해 고려가 망했다는 이방원의 주장에 “그 이전에 왕들이 덕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덕망이 없으니 민심이 멀어지고, 간악한 간신들이 그 틈을 파고든 것입니다”고 자신의 통치관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는 절대군주를 희망하는 이방원의 통치관에 배치되는 것. 결국 이방원은 사병혁파와 군제개혁을 추진하는 정도전과 신경전을 펼치다 명나라 사신으로 가게 됐다. 그러나 이방원은 떠나는 순간까지 정도전을 향한 복수를 예고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것이 앞으로 펼쳐질 왕자의 난이다.
고증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재현한 연출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연일 화제인 ‘정도전’. 여기에 드라마는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진정한 리더상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헛헛한 여운을 남겼다.
한편 50부작 대하드라마 ‘정도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새 왕조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40분 방송.
minhee@osen.co.kr
'정도전'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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