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라가 TV 화면이 좁다하고 맹활약하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속 왈가닥 여형사 '어수선'으로 변신, 전작에 이어 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두 편 연달아 편안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이제는 꽤 든든한 느낌마저 안긴다.
고아라는 지난해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를 제대로 맞았다. 스스로도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 이후 이렇다 할 대표작이나 활약상을 꼽을 것이 없다던 그는 의외의 도전으로 신의 한수를 뒀다. 배우는 맞는 것 같은데 작품보단 CF에서나 본 듯한 느낌, 정체성을 찾기 힘들던 그를 '과감히' 기용한 신원호 PD 이하 제작진의 '촉'은 고아라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절체절명의 순간, 어쩌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고아라는 원어민(?) 수준의 경상도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뽀얗고 아름답기만 했던 여인의 얼굴에 거친 파마머리와 촌스러운 화장을 더하면서 '성나정'으로 탄생했다.

대중이 다 알기란 어렵지만 사실 배우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러한 터닝 포인트가 있다.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도 난다 긴다 하는 연기 고수들도 드러난 것보다는 숨겨진 고비나 분수령을 지나온 경우가 많다. 고아라에겐 '응답하라 1994'가 바로 이러한 포인트였던 것이 자명하고 이를 기점으로 배우에겐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반인도 그렇건만 하물며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 입장에서 용기나 자신감은 사실상 삶이나 본업을 지탱하는 기본기다. 속된 말로 '자뻑'이라도 하지 않고서야 온 나라에 다 나오는 TV와 수백만 관객들이 지켜보는 스크린 위에서 딴 사람인 척 연기하기가 쉬울쏘냐. 그래서 수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고아라에게 필요했던 건 그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용기였는데 '응답하라 1994'에서 비로소 그 맛을 본 그는 차기작에서도 썩 당당하고 믿음직스런 모습이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속 어수선은 어찌 보면 전작의 '성나정' 캐릭터를 닮아 있기도 하지만 또 많이 다르다. 억척스럽거나 감정이 동할 때는 사투리를 연발하는 느낌이 성나정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보다 한층 의리 있고 정의로우며 어른스러운 느낌. 또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몸을 굴리는 장면도 많은데 '예쁜 인형이 망가진다'는 인상보다는 오히려 씩씩하고 리얼해 진하게 와 닿는다.
지금 고아라는 운동화 끈을 더욱 바짝 묶고 달려들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 차이야 천차만별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유무다. 고아라는 한때 '배우로서는 가치 없다'는 혹평을 감내해야 했던 기억을 가졌지만 인고의 시간을 보낸 지금, 연기력에 대한 호평과 함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두루 따내고 있다. 조금 머뭇댔으면 어떤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 더 많고 만날 기회도 가득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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