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느와르 영화 '하이힐'(장진 감독)이 '보고 나면 후회하지 않는 영화'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트랜스젠더라는 소재적 제약에도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안겨주는 영화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하이힐'은 흥행 여부를 떠나 제작진이나 관객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 장진 감독과 차승원이 6년여만에 의기투합한 작품이란 것과 더불어 보는 이들은 배우 차승원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차승원이 얼마나 좋은 배우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는 장진 감독이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하이힐'은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긴 채 살아온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작품. 단순히 줄거리와 '차승원이 여장을 한다'라는 정보만을 들으면 코믹한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웃길 수도 있는 것을 전혀 웃기지 않게 만드는 것이 장진 감독과 차승원의 힘이다.

지욱이 처음으로 여자 분장을 하고 밖을 나서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은 그가 내면에 숨겨온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표출되는 장면으로 이웃 주민과 마주치게 된 지욱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단순히 '웃김'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장진 감독은 “처음 ‘지욱’이 분장을 하는 장면을 찍을 때 스탭들에게 모두 ‘견뎌내자’고 당부할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차승원씨가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까 다르더라.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차승원의 뛰어난 연기덕분에 관객들에게 지욱의 엘리베이터신이 큰 웃음을 주는 동시에 뒷맛은 슬픈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고 전하기도.
특히 차승원은 전설적인 존재로 회자되는 형사로 분해 화려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데, 그 액션은 단순한 몸놀림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 표현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마초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멋진 액션이란 생각이 들지만 마지막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액션은 슬프고 애절하다.
섬뜩할 법한 파격 액션은 지욱의 여성성을 드러내는 의상과 더불어 마치 한 편의 춤을 보는 듯 하다. 번져가는 피가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는데, 피칠갑이아니라 '피의 미학'이라 부를 만한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해 준다. 이는 차승원이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존재를 잃게 된 분노와 슬픔이 담긴 내면 연기를 진정성있게 표출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액션 연기를 보면서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신기한 경험일 수 있다.
더욱이 마지막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더불어 보이는 텅 빈 지욱의 눈빛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해피 엔딩, 누군가에는 새드 엔딩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장진 감독은 “’장미’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가는 ‘지욱’의 마지막 얼굴이 참 마음에 든다”며 엔딩 장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차승원 역시 엔딩 신을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꼽으며 “어떤 대사 없이 ‘지욱’이 살아가는 모습을 단 몇 초 동안 담아내야 했다. 힘들었던 장면이기도 했지만, 짧은 순간 안에 ‘지욱’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담겨 나온 것 같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매 장면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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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