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보다 사람이다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고, 한국팀의 기량이 크게 만족스럽지 않은 걸 감안하더라도 이번 월드컵 '전쟁'은 다소 특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월드컵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방송 등 미디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쏟아붓고 있는 건 축구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중계진. 김성주, 송종국, 안정환 등 MBC '아빠 어디가' 팀을 그대로 데려간 MBC, 차범근-차두리 부자를 내세운 SBS, 이영표, 김남일로 맞불을 놓은 KBS까지 모두 해설위원 띄우기에 열심이다. 이들은 모두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자사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의 호감을 확보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안정환은 '라디오스타'에서 놀림을 받았고, 이영표는 강호동을 업었고, 차범근은 '런닝맨'을 뛰었다. MBC 중계진은 화보까지 찍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역시나 안정환의 어록이 인기를 모으더니 이영표의 작두 해설이 온라인을 강타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보자. 축구를 보다보면 잘하는 해설위원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해설위원을 보다 보면 덤으로 축구를 감상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직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잘 들리지 않지만, 안정환이 어떻더라, 이영표가 어떻더라 하는 말은 꽤 들린다.
스타 그 자체의 힘이 얼마나 큰가는 세월호 사태에서도 확실히 증명됐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JTBC가 특종을 쏟아내고 지상파 뉴스와 시청률을 나란히 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손석희라는 브랜드는 이를 가능케 했다. 그가 세월호 보도에서 후배 기자의 잘못을 진솔하게 대신 사과하는 장면은, JTBC로 간 '저의(?)'를 의심받던 손석희라는 브랜드 파워를 한방에 '재충전'시켰다.
손석희에 대한 호감은 JTBC로 번졌다. 온라인 상에서는 '내가 JTBC 뉴스를 기다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한때는 지상파 시청률을 앞지르기도 했다. 물론 뉴스는 손석희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실제 보도 콘텐츠가 차별화되기도 했지만 이같은 차별화를 인정받기까지 시청자를 끌어들인 건 손석희라는 사람 그 자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스포츠나 뉴스 보도도 스타 한 명의 힘이 좌지우지 하는데 연예계는 두 말할 것 없다. 일본에 강력한 팬덤을 가진 한류배우들이 스태프 연봉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돈을 많이 받아가는 현실은 두번 말하기 입아픈 얘기다. 그런데 비판만 하기도 애매한 것이, 실제 그들은 해외에 드라마를 척척 팔아내며 제작비를 충당해온다. 그냥 재미있는 시나리오였을 때에는 충무로를 떠돌기만 하던 것이, 인기 감독이나 배우가 붙으면 곧바로 투자까지 해결된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명인의 힘이다.
가요계서는 이제 노래의 질 만큼이나 제작자 이름 값이 중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크레용팝의 '빠빠빠'처럼 누구도 예상치못한 복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참 재미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름값 순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톱3로 분류되는 기획사의 대표가 모두 유명 연예인이라는 점은 우연일까. 물론 이들이 내놓은 콘텐츠 자체가 매우 훌륭하긴 하지만, 제작자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호기심이 이들이 내놓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는 측면도 무시할 순 없다.
비교적 유명한 사람이지만, 탑3에 들지는 못하는 한 뮤지션 겸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똑같은 신인그룹인데, 사실 엄밀히 따지면 데뷔 성적은 우리팀도 밀리지 않았는데 매번 메인뉴스를 차지하는 건 대형기획사의 신인그룹이다. 출발점이 다른 셈이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스스로 스타가 돼야겠다고 자주 말한다. 가수들의 입을 빌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직접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미디어 인터뷰에 적극적인 건 필수적이다. 씨엔블루의 소속사로 가요업계에서는 벌써 톱5로 분류되지만 일반 대중에겐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FNC엔터테인먼트는 그래서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만들며 기획사 알리기에 앞장섰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씨엔블루나 FT아일랜드가 아닌 한성호 대표 본인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직원들이라 할 수 있다.
오는 18일 실력파 걸그룹 마마무를 론칭시키는 WA엔터테인먼트의 김도훈 대표도 마마무의 첫 언론 인터뷰에 본인이 대신 나섰다. 저작권 등록 곡수만 500곡을 넘는 최장수, 최정상 인기 작곡가로서는 미디어 노출을 즐기지 않았지만, 제작자가 되면서 미디어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잘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앞장서주면 한번 봐줄까 말까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 떠야 한다. 아무리 해설이 매끄러워도, 그 해설위원이 누군지 모르면 채널은 돌아간다. 믿음직한 앵커가 없으면 생소한 종편 뉴스에 아예 눈길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신인그룹이라면 내가 아는 제작자가 만든 가수부터 본다.
어찌보면 불공정한 게임이다. 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며, 오히려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ri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