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그래도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었다.
지난 15일 방송된 KBS '정도전'이 정치9단들의 치열한 두뇌 싸움으로 시청자들의 방심을 잠시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 회 분량 안에서도 이들은 서로 '한 방씩' 주고 받으며 흥미진진한 전쟁을 치뤄냈다.
정도전(조재현 분)은 너무 강경해서 부러지기 쉬운 인물. 그의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질 때까지 그는 개혁의 속도를 조금도 늦추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강경한 현실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그를 명나라로 입조시키라는 세력이 창궐하고, 민심이 사나워지는 와중 그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건 하륜(이광기 분). 하륜은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며 사실상 용퇴를 종용했다. 어차피 개혁의 뜻은 그 후대에서 받게 될 것이니 물러나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정도전은 "그 용한 점술로 본인의 운명이나 가늠하세요"라고 맞받아쳤지만, 가족들의 반응을 보고 흔들렸다. 하륜에게 화를 내자 부인은 "사람들이 임금은 허수아비고 대감이 임금이라고 한다. 이인임이 살아돌아왔다고도 한다"며 독설했다. 정도전은 "집안 민심을 보니 저자 민심은 보나마나겠구만"이라며 씁쓸해 했다.
그는 결국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택한다.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쪽을 선택한 것. 그는 이성계(유동근 분)를 찾아가 "그동안 개혁에 매몰되어 민심을 헤아리지 못했다. 잠시 물러나 명나라와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정도전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성계가 자신의 편에 서주고 있다는 것. 그래서 마냥 지지도 않았다. 그는 물러나면서도 "궐을 비우는 동안 맘에 걸리는 게 있다. 하륜이다. 하륜은 지략이 출중한 사람이라 정안군(이방원, 안재모 분)과 떼어놓아야 한다. 하륜을 명나라에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이성계는 동의했고, 하륜은 순식간에 명나라 행이 결정됐다.
명나라는 조선에 매우 화난 상태이므로, 명나라로 향하는 건 사지로 가는 것이 마찬가지다. 하륜은 되로 줬다가 말로 받은 셈이다. 그동안 온라인 상에 '인생은 하륜처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처세를 보여왔던 하륜에게 닥친 큰 위기.
하지만 그는 "소생, 하륜입니다"라며 자신했다. 그는 이방원에게 "잠깐의 방심으로 삼봉에게 허를 찔렸으나 심려말라"고 여유를 보였다. 그러면서 정도전을 매우 싫어하는 이숙번을 이방원에게 소개시켰다.
정도전은 '한 방'을 먹이고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방원에게 "하륜은 차라리 황제에게 부탁해서 명나라에 남는 게 좋을 거다. 돌아오는 순간 조선이 그의 사지가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방심하지 않긴 하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도전의 사직 소식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다. 더 몰아쳐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명나라로 간 하륜은 뜻 밖의 기회를 잡는다. 역시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서신을 보냈다며 정도전에게 매우 화난 황제는 하륜에게 "정도전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이방원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정도전은 이대로 부러질 것인가. 역사는 답을 알고 있지만, 드라마 속 정치9단들은 쉽게 승자가 나지 않는 장군멍군 게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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