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마산구장. NC 쪽으로 일찌감치 승부가 기운 7회 한화 마운드에는 낯선 투수가 새롭게 올라왔다. 등번호 94번의 좌완 투수 김기현(24)이었다. 그는 2사 2루 위기에서 김준완을 상대로 3연속 볼을 던진 뒤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이어 투수 앞 땅볼로 잡고 실점없이 막아냈다.
이날 김기현은 1⅓이닝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에게는 역사적인 프로 데뷔전이었다. 15일 NC전에도 김기현은 NC가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5회 마운드에 올라 3이닝을 4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2경기에서 4⅓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2.08로 프로 데뷔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김기현은 "NC는 내가 전에 있던 팀이다. NC를 상대로 데뷔전을 갖게 돼 긴장도 많이 했고, 처음에는 멍한 기분도 들었다"며 "스트라이크를 던진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2군보다 관중들도 많고 분위기도 달랐다. 선배들이 긴장하고 말고 편하게 던지라고 한 것이 도움됐다"고 데뷔전의 설렜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일고-원광대 출신의 김기현은 2012년 졸업했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채 신생팀 NC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NC에서 방출됐고, 테스트를 통해 한화에서 다시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NC에는 비슷한 유형의 좌완 투수가 많았고, 한화는 184cm 96kg의 듬직한 체격과 가능성을 주목했다.
김기현은 "NC에서 나온 이후 테스트로 한화에 왔다. 절실함이 생겼다"며 "NC에서는 첫 프로팀이라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훈련만 열심히 했다. 한 번 경험 생기니 프로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됐다. 한화에서 코치님·선배님들과 함께 좋은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고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설명했다.
지난해 교육리그 때부터 한화 퓨처스 선수단에서 다듬어진 김기현은 5월말부터 2군 경기에 투입됐다. 2군 4경기에서 2홀드 평균자책점 1.93으로 호투하자 지난 11일 1군의 호출을 받았다. 그의 최고 장점은 안정된 제구력이다. 2군에서도 4⅔이닝 동안 무사사구였고, 1군에서도 4⅓이닝 무사사구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9이닝째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을 전혀 주지 않고 있다. 타자 몸쪽으로 과감히 붙이는 제구가 돋보인다. 김기현은 "나는 공을 빼고 그런 것보다 투스트라이크에서도 빨리 승부하는 과감한 투구를 좋아한다. 볼넷 주는 것을 싫어한다. 어차피 타자가 10번 중 3번을 살아나가면 성공이라고 한다. 내가 7이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승부한다"고 자신만의 투구관을 말했다.
김기현은 구속이 140km 안팎으로 빠르지 않지만 정교한 제구와 슬라이더·너클커브를 주무기로 삼는다. 커브 각도가 좋다는 평. 그는 "왼손 투수라면 우리나라 최고 류현진 선배를 좋아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며 "나도 언젠가는 어느 누군가가 닮고 싶어하는 투수가 되는 게 목표다. 이제 시작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선발도 해보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프로 미지명과 신고선수 입단 그리고 방출과 두 번째 신고선수 입단. 반복된 실패와 우여곡절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시련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김기현이 한화에서 연습생 신화를 쓴 장종훈과 한용덕의 뒤를 이어 신고선수 신화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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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