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괴담’ 무릎담요 필요한 최고 연비의 감성 호러물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6.21 07: 49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탕수육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군만두 서비스가 나온 기분이랄까. ‘소녀괴담’(오인천 감독)은 공포 영화가 도달해야 할 1차 목표 지점인 서늘함과 오싹함 조성에 만족하지 않고, 코미디와 순정만화 같은 달달한 로맨스까지 한데 버무린 영리한 학원 호러물이다. 덩치만 큰 미국 자동차와 달리 높은 연비까지 갖춘 독일차를 닮은 올해 첫 공포영화다.
 재주에 비해 욕심이 과하면 득 보다 실이 커지는 법. 하지만 ‘소녀괴담’은 마치 아메리카노에 시럽 녹듯이 서로 다른 장르가 알맞은 크기로 스며들어 의외의 감칠맛과 재미를 선사한다. 공격형 미드필더 박두식 한혜린이 쉬지 않고 상대 골문을 향해 크로스를 올려주고, 강하늘 김소은이 이 패스를 받아 골 그물망을 흔드는 것처럼 배우들의 팀워크도 기대 이상이었다. 누구 하나 튀거나 뒤쳐지지 않고 골고루 팀플레이에 협력했고, 퇴마사로 나온 ‘맏형’ 김정태까지 골 넣는 골키퍼처럼 그라운드를 넓게 썼다.
 틴에이저와 20대 초반이라는 정확한 타깃과 그들을 겨냥한 캐스팅과 예산, 여기에 왕따보다 더 나쁜 방관자 딜레마를 다룬 주제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지하철 귀신과 피로 범벅된 마스크 귀신 등 여러 혼령이 나오지만, 진짜 끔찍한 건 어쩌면 그런 귀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현실이라는 메시지도 잘 감지된다.

학교 폭력과 방황하는 청춘들의 질풍노도를 뼈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얼핏 ‘여고괴담’ ‘고사’가 떠오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오히려 ‘시실리 2km’나 ‘오싹한 연애’를 연상케 하는 공포 전문 신인 감독의 재치가 눈에 띈다. 강원도 횡성에서 두 달간 합숙하며 촬영한 ‘소녀괴담’은 제작진과 배우들의 평균 연령이 30세가 안 돼 늘 활력과 아이디어가 넘쳤고, 극중 액자 속 급훈으로 나온 ‘All for one, One for all’처럼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고 한다.
수훈갑은 역시 강하늘이다. 빼어남 조각 미남은 아니지만 안정된 표정 연기와 정확한 딕션, 발음 덕분에 끝까지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민호 김수현에 이어 차세대 스크린 스타가 될 재목이라는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는데 90분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집안 내력 때문에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됐지만, 그런 비범함 탓에 세상과 벽을 쌓고 사는 외톨이 고교생 인수를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초등학교 시절 억울하게 익사한 친구를 돕지 못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소녀 귀신(김소은)의 한을 풀어주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는 스토리. 혈액순환이 될 리 없는 소녀 귀신의 창백한 손에 입김을 불어주는 장면은 자칫 오글거릴 법 하지만 첫사랑 소년의 풋풋함으로 잘 표현했고, 후반부 도서실 방화를 막기 위한 해결사로서의 모습도 잔상에 남는다.
‘전설의 주먹’에서 벽돌맨으로 눈도장을 찍은 박두식도 불량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일진 역을 맡아 영화의 볼륨감을 높였다. 의외의 발견은 왕따 가해자이자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현지 역의 한혜린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남학생의 따귀를 때리는 모습이야 대체 가능한 연기이겠지만, 인수를 통해 속죄하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내적 갈등을 구체적인 상황 묘사나 대사 없이 흔들리는 눈빛과 안면 근육만으로 보여줬다. 배역에 빙의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놀라운 몰입이었다.
초반부 연쇄 살인사건을 등장시켜 집중도를 높인 감독의 맥거핀은 칭찬하고 싶지만, 인수의 오피스텔 신에서 바닥에 떨어뜨린 플라스틱 생수통 장면은 옥의 티였다. 대기업이 아닌 영화제작가협회에서 공동 출자해 설립한 신생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쳐스의 창립작으로 중고교 기말고사가 끝나는 7월 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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