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괜찮습니다. 팀이 이겼으니까 좋죠".
한화 4번타자 김태균은 지난 21일 대전 LG전에서 8회 역전 스리런 홈런을 터뜨리며 4-2 역전승을 견인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선발투수 이태양(24) 때문이었다. 이태양은 이날 개인 한 경기 최다 120개의 공을 뿌리며 7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지만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야속하게도 그가 마운드를 내려간 뒤 타선이 터졌다.
경기 후 김태균은 이태양에게 "우리팀 에이스인데 타자들이 못 쳐줘서 미안하다. 승리를 챙겨줘야 하는데…"라고 미안함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태양은 "저는 괜찮습니다. 팀이 이겼으니까 좋죠"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불운에도 웃을 수 있는 투수,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한화 시절 바로 그런 투수였다. 김태균도 "태양이가 나오는 날에는 편하다. 현진이 만큼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안정적이고 믿음직하다"고 인정했다.

류현진은 약체가 된 한화에서 홀로 버티고 선 장판교 장비 같은 존재였다. 매번 잘 던지고도 승리를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럴 때마다 류현진은 "나는 괜찮다"며 웃었다. 한국에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2년에는 9승에 그치며 원형탈모증에 시달릴 만큼 속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태양의 모습도 그렇다. 이태양은 올해 13경기에서 2승3패를 기록하고 있다. 승패만 놓고 보면 돋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평균자책점 3.57과 6차례 퀄리티 스타트는 수준급이다. 평균자책점은 전체 7위이자 국내 투수 4위로 토종 우완으로는 2위다. 그러나 매번 야수들과 구원투수들의 도움 미비로 승이 적다.
기록이 잘 말해준다. 이태양은 올해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27명 중에서 선발등판시 9이닝당 득점 지원이 3.88점으로 가장 적다. 선발로 나온 9경기 중 무득점 1경기, 1득점 5경기로 1득점 이하 지원이 무려 6경기. 이상하리만큼 그가 나오는 날 타선이 침묵한다. 이래서는 다나카 마사히로가 와도 많은 승수를 거두기 어렵다.
불펜의 뒷받침도 아쉬웠다. 선발승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으나 불펜에서 승리를 지키지 못한 것도 두 차례나 된다. 지금보다 3~4승은 더 챙길 수 있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보통 투수라면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무너질법도 하지만 이태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시련을 통해 스스로 단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태양은 21일 LG전 승리 불발에도 "정근우·송광민 선배님들의 좋은 수비가 있었기에 잘 던질 수 있었다. 수비 도움 많이 받았다"고 공을 돌렸다. 타자들이 못 쳐준 것보다 수비 도움을 먼저 이야기했다. "선발을 하다 보면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개인 승리를 못해도 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이태양의 말이다.
여기서 이태양이 말하는 역할이란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것이다. LG에서도 한계 투구수를 넘어섰지만 그는 "7회 만큼은 맞더라도 내가 꼭 책임지고 막고 싶었다. 최대한 길게 던져 불펜에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 역시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멘트, 류현진의 입버릇을 빼다박았다. 류현진의 오른손 버전이라 할 만하다. 불운에도 의연하게 웃는 이태양의 표정에서 류현진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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