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민기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장·단점,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개봉 전 무엇보다 베드신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사시미’ 칼과 선홍빛 피가 난무하는 잔혹한 장면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느와르의 색이 짙다”고 칭찬했고, 누군가는 “너무 자극적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영화 ‘황제를 위하여’는 부산의 불법 도박판과 사채업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민기는 영화에서 주인공 이환 역을 맡아 욕망을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렸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영화의 주인공 이민기가 자신의 작품을 본 소감은 어떨까. 보통은 객관적인 대답이 어렵다며 피하기 마련인데, 이민기는 조곤조곤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첫날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헷갈리는 게 있었죠. 분명 장점이 있는 영화인데 처음 봤을 때는 ‘어? 얘기가 이렇게 풀렸네.’ 싶은 게 있었어요. 이 영화가 느껴지는 게 세잖아요? 감정이나 이런 게 세게 그려지기도 했고 관객들이 이해할 틈을 주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죠, 사실. 친절하진 않지만 그런 긴장감, 감성적인 면으로는 잘 만들어낸 거 같아요. ‘왜?’를 찾는 건 이 영화의 색깔과는 맞지 않아요. 개연성 보다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욕망과 허망함에 대한 부분이니, 이 부분을 집중해서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이민기가 처음 접했던 ‘황제를 위하여’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느와르 물의 시나리오였다. 때문에 조금 더 남다른 느와르를 찍고 싶었던 그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시나리오나 각본에도 자신의 의견을 냈고, 헤어나 음악, 의상, 전체적인 부분들을 모두 함께 고민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독특한 펌 헤어스타일과 거대한 도시로 그려진 부산의 풍경 등이다.
“이번 작품은 유난히 그랬어요.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대부분 배우들이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는 얘기를(의견을 내게) 하게 돼요. 이번에는 유난히 스타일 부분에서 회의를 많이 하게 됐고, 좋은 아이디어들도 내고, 감독님이 가져온 걸 보여주고 저도 얘기하고 많이 맞춰보고 간 거 같아요.”
특히 김해 출신인 이민기는 직접 감독과 함께 촬영 장소를 찾아다닐 정도로 영화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장소도 하려고 했던 장소가 문제가 생겨서 ‘좋다, 같이 찾아보자’ 해서 찾아본 거였거든요. 부산에 지인들이 있잖아요. 연수 오피스텔이랑 ‘템테이션’ 화장실, 샤워 장면 배경 등 세 군데가 제가 구한 거예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걸 그랬네요. 페이(Pay)도 받고 하는 걸로?(웃음) 재밌었어요. 참여를 하니 더 우리 영화에 애정이 생겼어요. 쉬는 날 숙소에 있으면 뭐 해요? 영화에 도움 되는 걸 하니까 더 좋았어요.”
여배우 이태임과의 ‘베드신’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 중 하나였다. 몸을 만들기 위해 닭 소시지만 먹었다는 그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영화 속 마른 근육질 몸의 역할을 설명했다. ‘베드신’에 대해서는 “집중하고 오히려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며 잘 찍는 데 신경을 썼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 장면을 잘 만들어야겠는 일념이 컸어요. (중략) ‘베드신’이 길고 세게 느껴질 수 있죠.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불편한 감정이에요.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뭔가 알 수 없는 ‘마이너’한 감정을 풍기니까…. 이 영화에서 그 ‘베드신’이 필요한 이유는 그거에요. 그 불편함. 그래서 바른 길을 갔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을까. 스스로 “친절하지는 않은 영화”라 말했고 영화 속 주인공 이환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생각이나 내면을 잘 읽을 수 없는 부분들이 종종 등장하는 게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얘기하면 공감 안 되는 부분은 없었어요. ‘칼로 찌르는 것, 죽이는 것도 공감되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웃음) 그런 차원이 아니라 욕망이란 게 끝이 없다는 것, 허망할 걸 알면서도 가게 된다는 것,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것, 사람을 유혹하고 자극적인 것에는 ‘왜’란 이유가 굳이 필요 없다는 것에 공감했죠. 살면서도 이해해가고 있고 내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그런 면을 단면적으로 극대화시켜서 표현한 게 이환이란 인물인 것 같아요. 직접적인 욕망에 왜가 왜 필요한가, 이유가 있나? 끝이 없다는 걸 알고 허망할 걸 알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있으면 있을수록 더 쫓게 되는 게 욕망이다.”

전작 ‘연애의 온도’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김민희와 같은 느와르 장르로 경쟁을 펼치게 됐다. ‘우는 남자’를 봤는지 물으니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맞다”며 챙겨 봤다고 우정을 드러냈다.
“‘하이힐’은 아직 못 봤어요. 아직 시간이 없어서….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게 맞는가봐요. ‘우는 남자’는 어떻게든 구해서 봤는데. 역시 작명도 좋고 재밌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김민희 누나에게 인증샷을 보냈더니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야. 나도 꼭 볼게’란 답을 받았어요. ‘하이힐’은 성웅이 형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직은 못 봤어요. 잘은 몰라도 그 두 작품 모두 느와르인데 본질적인 느와르에 가까운 건 ‘황제를 위하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세고 자극적인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 같아요. 좀 젊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이민기는 아역 배우 여진구와 ‘내 심장을 쏴라’ 촬영을 하고 있다. 자신과 닮은 여진구가 “너무 좋다”던 그는 “너무 예쁘다. 요즘엔 보고 싶다”며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에 특별 출연 식으로 잠깐 출연한 것을 빼면 브라운관에서는 2007년 이후 이민기를 볼 수 없었다. 그는 “드라마 호흡이 살짝 그리울 때가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좋은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황제를 위하여'를 볼 여성 관객들을 향해 특별한 메시지를 덧붙였다.
"거칠고 센 영화지만 영상미가 아름다운 지점이 있어요. 멋스럽달까요? 그런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눈을 가리고 공포영화를 보면 더 무섭다고 하잖아요. 더 상상하게 되니까 눈을 크게 뜨시고 영화를 보세요. 사실, '영화가 자극적이야' 이러면 우리 게 세고 자극적이에요. 영화가 그런 면이 있는 것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여성분들도 욕망이 있죠. 남자의 관점에서 드러나는 욕망을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이 인간들이 얼마나 단순하게 사는지.(웃음)"
eujenej@osen.co.kr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