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와 최고 속도는 그다지 밀접한 관계가 없다. 가장 중요한 덕목도 아니다. 하지만 숨은 의미는 있다. 바로 과감성이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성룡(29, 수원)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과감성이다. 벨기에전과 같은 경기 양상에서는 더 그렇다.
국가대표팀 부동의 수문장인 정성룡은 이번 월드컵 2경기에서 5골을 실점했다. 실점을 모두 골키퍼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수치다. 특히 알제리전에서는 부진했다. 외신들도 혹평했을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영국 는 최하 평점인 4를 줬고 6점이 최악인 독일의 도 5점을 줘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드러냈다.
펀칭을 위해 골문을 비우고 나왔으나 실패해 실점을 빌미를 제공한 두 번째 실점은 정성룡의 책임이 컸다. 여기에 첫 번째 실점 장면도 논란이 됐다. 치고 들어오는 슬리마니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했어야 했다. 각을 좁히고 나왔다면 수비수 두 명을 달고 뛰는 슬리마니를 압박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정성룡은 골문을 지켰고 결국 슬리마니는 유유히 선제골을 잡아냈다.

잇따른 비판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경기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치르는 모습도 잡힌다. 통계에서도 이런 수치를 어렴풋이 볼 수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자료에 따르면 정성룡의 이번 대회 최고 스피드는 13.4㎞/h다. 필드 플레이어와의 비교는 당연히 의미가 없지만 대회에 참가한 32개국 골키퍼 중 가장 느리다. 대개 골문 앞만 지키고 있었다는 뜻이다. 골키퍼에게 스위퍼의 역할을 기대하는 최근 경향과 비교하면 다소간 아쉬움이 남는다.
현존하는 골키퍼 중 가장 활동 범위가 넓은 선수인 마누엘 노이어(독일)의 최고 속도는 19.0㎞/h였다. 간혹 너무 모험적인 수비를 해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기민한 움직임을 통한 노이어의 커버 플레이 반경은 수비시 하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노이어는 이번 대회에서 벌써 10㎞를 움직여 같은 경기를 뛴 정성룡(7.4㎞)보다 더 많은 공간을 커버했다.
아직 선발 명단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홍명보 감독의 든든한 신임, 그리고 수비의 조직력을 고려하면 정성룡은 다시 장갑을 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벨기에전에서는 좀 더 자신 있고 과감한 움직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어차피 공격적으로 나가야 하는 경기다. 수비 라인을 올리는 것은 불가피하고 뒷공간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알제리전 첫 실점과 같은 상황이 더러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정성룡이 좀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 수비수들도 짐을 덜 수 있다. 필요할 때 보여주는 활발한 움직임은 팀 사기도 끌어올린다. 수비수들에게 있어 골키퍼는 무엇보다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풀 죽은 모습으로 있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벨기에를 꺾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성룡의 활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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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브라질)=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