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게 늘어진 현장. 화분이 넘어져 있고, 바닥엔 피가 흥건하다. 피가 튄 탁자 뒷편으로 쓰러진 여성 한 명이 어렴풋이 스친다. 게스트 소유를 비롯해 전현무, 박지윤, 홍진호, NS윤지, 강용석 등이 현장에 도착해 살피기 시작한다. 그러자 곧장 벽세트가 철거되고, 폴리스 라인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리고 들리는 외침.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종합편성채널 JTBC 추리게임 '크라임씬'(연출 윤현준)은 매주 수요일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 세트장에서 촬영된다. 본방송보다 약 1주일여 앞서 녹화가 진행되는 '크라임씬'은 오는 28일 방송되는 '크라임씬' 8회 '고여사 살인사건' 편을 지난 18일 촬영했다. 이 현장을 OSEN이 방문, 편집된 방송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 롤카드 분배, 범인은 철저하게 '랜덤'

출연진이 도착하기 전부터 스태프는 분주했다. 그들의 손에서 '크라임씬'의 상징과도 같은 도그빌 세트가 정교하게 탄생하고 있었다. 제작진만 비밀스럽게 알고 있는 각종 단서와 증거가 촘촘하게 도그빌 세트 구석구석을 채워나갔다.
출연자들은 1인 대기실에 나뉘어 대기했다. 이는 7시간이 넘게 펼쳐질 '고여사 살인사건' 편의 롤카드를 분배받고, 각자 철저하게 숙지하기 위함이다. 랜덤하게 주어진 롤카드를 펼치기 전까지, 당사자도 자신이 이날의 범인 역할이라는 걸 전혀 알 수 없다. 롤카드를 보고 반응하는 그들의 표정이 물론 첫 번째 힌트다.

윤현준 PD는 이 롤카드에 대해 "해당 캐릭터가 사건과 연관된 주요 내용들이 A4 2~3장 분량에 담겨있다. 중요한 부분은 숙지해야 하며, 적히지 않은 내용은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한다. 본질을 훼손할 정도로 구멍이 생기는 부분이 생긴다면, 중간 인터뷰 도중 제작진과 상의해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 숨 막히는 현장검증, '모든 게 증거다'
현장 검증은 그야말로 '크라임씬'의 꽃이다. 모든 출연진은 도그빌 세트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닫혀있던 책상 서랍을 열어 확인하고, 넘어진 화분 주변을 유심히 살핀다. 눈에 띄는 상흔을 체크하고, '찰칵'…수상쩍은 것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해 증거로 확보한다.
현장 검증 과정에서 범인 A와 나머지 5명의 출연진의 행동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5명이 증거찾기에 몰두한다면, 한데 뒤섞여 있는 범인 A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판단과 집중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 1주전 '교도소 살인사건' 당시 결정적 증거였던 '야광 크레파스'의 존재를 찾지 못해 범인 검거에 실패한 전적이 있는 출연진들은 이날 유독 더 꼼꼼히 현장을 뒤졌다.
홍진호는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오늘은 결정적인 증거를 꼭 찾아내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현장검증이 '크라임씬'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고 설명했다.
# 난상브리핑, 롤 연기는 어색…추리는 진지
1시간여 진행되는 '난상브리핑'은 정적이다. 방송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긴박하게 편집된 결과물인 만큼, 현장에서 진행되는 전체 과정은 느슨한 모양새다. 주어진 롤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전직 프로게이머, 아나운서,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출연진의 '발연기'도 피할 수 없다. 이는 살인사건이라는 상황을 코믹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이날은 여장을 한 전현무의 역할 모습에, 모두의 추리력이 10포인트는 감소한 분위기였다.

추리는 진지했다. 각자가 확보한 증거를 나열하며, 자신이 생각한 범인을 지목했다. "범인은 너다!" 이날 게스트로 투입되어 '크라임씬'에 첫 참여한 씨스타 멤버 소유는 기존 출연진보다 더욱 진지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줬다. 오히려 시즌 중반 고정투입된 강용석 변호사는 동채널의 '썰전'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움은 온데간데 없이 '추리바보' 명단에 이름을 추가했다.
# 촬영시간 450분, 추리엔 휴식도 필요없다
추리에는 휴식도 없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됐던 '크라임씬' 8화 녹화는 같은날 오후 6시를 훌쩍 넘길때까지 이어졌다. 롤카드를 뽑고, 알리바이, 현장검증, 난상브리핑, 추가 현장검증, 일대일심문, 그리고 최종선택과 범인공개까지 무려 450분이 흘렀다. 휴식시간이 되면, 각자의 대기실에서 작가와 카메라가 밀착해 출연자들의 속마음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식 인터뷰가 아닌 진짜 휴식시간이 왔지만, 출연진은 추리를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매니저와 주변인들에게 단서와 범인에 대한 의견을 자문하기도 했다. 최종 범인을 찾기 전까지 모든 출연진은 사력을 다해 막판 스퍼트를 냈다.
NS윤지는 "대학생 때 이후로 이렇게 머리를 쓰긴 처음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을 처음 만났는데, 포맷 때문인지 아무도 믿지를 못하겠다. '추리 바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 진짜 범인이 누구였는지는 공개할 순 없다. 다만, 450여분간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쫄깃해진 뇌의 기분좋은 당김이 오는 28일 오후 11시 방송되는 '크라임씬' 8회 '고여사 살인사건'을 통해 시청자에게도 전달될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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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