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이런 경기력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강호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선전했다. 비록 졌지만 분명 알제리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한국은 27일(이하 한국시간)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졌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리고 있었던 한국은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도 후반 33분 역습 상황에서 베르통언에게 실점하며 패했다. 골 결정력 부재는 여전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기력은 차라리 러시아, 알제리전보다 나았다.
벨기에는 이날 경기에 베스트 멤버를 투입시키지 않았다. 아자르, 루카쿠, 콤파니, 비첼 등 핵심 선수들이 빠졌다. 100% 전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기력은 인상적이었다. 전반 초반부터 한치도 밀리지 않으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전반 44분 데푸르가 비신사적인 반칙으로 퇴장을 당한 뒤에는 수적 우세까지 등에 업었다. 더 자신감 있게 벨기에와 맞붙었다.

알제리전과 비교하면 세 가지가 달라졌다. 우선 선발 라인업이었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러시아전 베스트11을 알제리전에 그대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실패를 맛봤다. 그 교훈이었을까. 홍 감독은 벨기에전 선발 명단에서 두 가지 변화를 줬다. 부동의 수문장이었던 정성룡을 김승규로 바꿨다.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했으나 두 경기 연속 별다른 활약을 못했던 박주영 대신에는 김신욱을 넣었다.
효과가 있었다. 김승규는 과감한 펀칭과 활발한 움직임으로 골문을 사수했다. 수비수들과 협력해 벨기에의 높이를 막아냈다. 그간 많은 출전 시간을 소화하지 않아 체력이 있었던 김신욱은 벨기에의 장신 숲을 뚫고 분투했다. 수비에서도 펠라이니를 전담 마크하는 등 공헌도가 있었다. 수적 우세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후반 시작과 함께 이근호를 넣은 것도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호흡을 맞춘 경험이 많은 김신욱과 이근호를 투톱으로 써 시너지 효과를 꾀했다.
전술도 달라졌다. 알제리전에서는 소극적이었다. 선수들이 중앙에 오밀조밀하게 모였다. 일단 막고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알제리의 빠른 역습에 수비 라인이 무너지며 전반에만 세 골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벨기에전에서는 더 적극적이었다. 라인을 공격적으로 올렸고 공격수들도 뒷걸음질치기보다는 앞으로 전진했다. 예상치 못한 거센 공격에 주전 선수들을 뺀 벨기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신무장도 달라졌다. 알제리전에서는 실점 이후 급격하게 흔들렸다. 불안감이 선수단을 지배했다.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두 번째 골, 세 번째 골을 연거푸 허용했다. 하지만 벨기에전에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라는 선수들의 강한 투지와 정신무장이 돋보였다. 한 발 더 뛰려고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잡혔다. 실점 이후에도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런 세 박자가 조화된 한국은 더 공격적인 팀, 팬들이 원하는 팀으로 달라져 있었다. 다만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경기라는 점이 아쉬웠다.

알제리전 전반 20분까지의 한국 포메이션(왼쪽)과 벨기에전 전반 20분까지의 한국 포메이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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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브라질)=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