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자와, 속아도 속았는지 판정도 못 내리는 자. 한국 자동차업계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제조사와 ‘기만’의 기준조차 정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 속에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소비자는 제조사도, 정부도 믿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정부는 26일, 현대자동차 ‘싼타페 2.0’과 쌍용자동차 ‘코란도S’에 대한 연비 재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같은 사안을 놓고 각기 다른 결론을 내림에 따라 소비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국토부와 산업부는 그 동안 연비에 대한 검증방식과 기준에서 각기 다른 잣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결과에 일관성이 있을 리 없었다. 문제 발생 후 재검증 과정에서는 국토부가 절차를 주관했고 국토부 기준을 토대로 산업부와 업체의 의견을 반영해 나름 정리 된 잣대를 마련했다.

새롭게 마련 된 기준에 따라 2013년 1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6개월 간 양 부처와 양부처가 의뢰한 시험기관, 그리고 업체의 입회 하에 재검증이 진행 됐다.
그러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양 부처가 의뢰한 시험기관들은 재검증에서도 각기 다른 수치를 제시했고 적합/부적합 판정 또한 제각기 달랐다. 국토부가 의뢰한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싼타페 2.0과 코란도S 모두에 부적합 판정을 내린 반면 산업부가 의뢰한 한국석유관리원과 자동차부품연구원은 두 차량에 대해 모두 적합 판정을 내렸다.
결국 6개월간의 재검증 과정이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고 재검증 이전의 상황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소비자들은 ‘한심하다’는 목소리다. 정부가 적합/부적합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재검증 과정에서 측정 된 연비는 제조사의 신고 연비보다 더 높게 나온 차량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현대차 싼타페 2.0이 복합연비에서 -6.3%(2013년 원조사 -8.3%), 쌍용차 코란도S가 -7.1%(2013년 원조사 10.7%)를 보였다고 결론 내렸고 산업부도 싼타페 2.0이 -4.2%(원조사 -0.5%), 코란도S가 -4.5%(원조사 1.4%)의 오차를 보였다고 밝혔다. 상하 오차 5% 범위를 벗어났기에 국토부는 부적합, 5% 범위 안에 있었기에 적합하다는 산업부의 주장은 “모자란 것은 마찬가지”라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헛된 기싸움이다.
세부 조건에서도 도심이든, 고속도로든, 어떤 시험기관이 했건 신고 연비보다 더 나온 차량은 없었다. 산업부에서 의뢰한 한국석유관리원과 자동차부품연구원이 겨우 두 차량의 고속도로 연비가 신고 연비와 오차가 없는 것으로 판정했을 뿐이다.
두 부처가 정한 기준에 적합한가 아닌가는 부처가 판단할 일이지만 소비자가 봤을 때는 어느 차량도 소비자를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 동안 의심의 눈길을 보냈든 소비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분노하고 있다.
서울YMCA는 국토부 연비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논평에서 “연비 과장 사실이 밝혀지고 조사에 들어간 시점이 작년 2월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부처간 연비측정 기준으로 혼선을 빚으며 흘려 보낸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비자 피해는 고스란히 방치돼 있었다”며 “정부의 공인연비 제도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이미 바닥이 났다”고 비난했다.
덧붙여 “국토부의 과징금 부과계획을 계기로 관행적이었던 제조사들의 연비 부풀리기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제조사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 조치와는 별개로 전체 피해 소비자에 대한 피해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차원에서라도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제조사로서는 국토부 기준이니, 산업부 기준이니를 논할 상황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느낀 실망과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치유해 줄 것인 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업부 기준으로 적합 판정을 받았으니 우리 잘못은 없다는 자세로 방관하다가는 점점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국내 시장의 토양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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