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립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투혼이었다. 칠레가 정말 좋은 경기를 했다. 그러나 승부차기의 신은 칠레의 편이 아니었다. '천적' 브라질을 깰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 대업을 코앞에서 놓쳤다.
칠레는 29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졌다. 1-1을 만든 뒤 연장까지 120분 동안 대등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승부차기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로써 칠레는 두 대회 연속 브라질에 막혀 16강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찌됐건 결과가 중요했다.
또 브라질에 울었다.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대다수 남미 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아픔이지만 칠레도 브라질에 약했다. 특히 브라질 원정 경기에서는 5무21패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월드컵 도전사를 번번이 가로 막은 것도 브라질이었다. 2010년까지 8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칠레는 조별리그 제도가 마련된 뒤 3차례(1962·1998·2010)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그러나 번번이 브라질 격파 미션은 실패였다. 브라질은 공포였다.

자국에서 열린 1962년 대회 때는 결승행 길목에서 브라질에 막혔다. 1982년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 칠레는 1998년 프랑스 대회 본선에 오르며 환호를 질렀으나 역시 브라질의 벽을 못 넘었다. 이반 사모라노, 마르셀로 살라스, 클라렌스 아쿠냐 등 유럽 정상급 선수들을 앞세운 칠레는 조별리그에서 3무를 기록하며 가까스로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16강에서 브라질에 1-4로 무릎을 꿇었다. 삼파이우와 호나우두에게 2골씩을 내줬다. 참패였다.
그 후 첫 토너먼트 진출이었던 2010년 남아공 대회 때도 역시 16강에서 브라질에 가로 막혔다.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새로운 피로 무장한 칠레였지만 브라질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0-3으로 졌다. 이처럼 칠레에 브라질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여겨졌다. 칠레에 진 뒤 노란색 유니폼으로 바꾼 브라질은 과거의 악연을 갚기라도 하듯 철저히 칠레를 짓밟았다.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부임한 뒤 전열을 재정비한 칠레는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기동력을 앞세운 ‘닥공 축구’로 화제를 일으켰다. 조별예선에서 전 대회 우승팀 스페인을 집으로 돌려보내며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상대해야 할 팀은 또 브라질이었다. 전의를 불태우는 것은 당연했다. 4년 전 패배 당시 그라운드 위에 있었던 아르투로 비달은 “브라질을 격파하는 것은 우리의 꿈이다”라고 했다.
잘 싸웠다. 전반 18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첫 실점을 했다.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그리고 기세가 산 브라질 선수들에게 당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칠레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차분히 경기를 치러나갔고 전반 32분 상대 수비의 실책을 놓치지 않고 산체스가 동점골을 넣었다.
부담을 던 칠레는 후반 중반까지는 오히려 밀어붙였다. 후반 19분 아란기스의 결정적인 슈팅이 세자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지 않았다면 역전도 가능했다. 90분까지 브라질보다 팀 전체로 6㎞ 이상을 더 뛰었다. 기동력, 그리고 상대의 볼 점유를 어렵게 하는 압박은 여전했다. 조별리그에서 상대가 공을 소유했을 때 평균 12.4초만에 공을 빼앗아냈던 칠레의 강력한 압박은 브라질을 상대로도 먹혔다. 만약 피니야의 종료 직전 슈팅이 조금만 더 낮았다면, 칠레는 자국 축구 역사에 거대한 업적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승부차기가 문제였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다. 종료 직전 강력한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는 아쉬움을 남겼던 첫 키커 피니야가 실축했다. 가장 믿을 선수였던 두 번째 키커 산체스의 킥도 세자르 골키퍼에게 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2-2로 맞선 상황에서 마지막 키커였던 하라의 슈팅이 오른쪽 골 포스트를 맞고 나왔다. 잘 찼지만 운이 따르지 않은 결과였다. 칠레의 투혼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더 이상 브라질 땅에 남을 수는 없었다.
skullboy@osen.co.kr
ⓒ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