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대단했다. 끊임없이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줬다. 작품 내외적으로 좋은 배우와 드라마, 그리고 어떤 지도자가 참이냐는 화두를 던졌다.
KBS 1TV 주말드라마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은 오늘(29일) 50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1부에서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 대업의 꿈을 꾸며 혁명을 결의했고, 2부에서는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3부에서는 조선건국 후 정도전이 이방원의 손에 죽음을 맞는 '순교'의 과정이 펼쳐졌다. 정도전의 삶은 그 자체로 극적인 드라마이며, 아슬아슬한 스릴러 같았다. 숱한 위기와 역경을 헤치고 살아남았으나 이방원에게 죽음을 맞는다. 그의 방심인지, 아니면 과오인지는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 좋은 드라마란 무엇인가
퓨전사극이 판치고 사극 소재의 판타지가 유행처럼 만들어지는 요즘, 복합장르가 아니면 시청률 면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가 돌았다. 마침 '정도전'은 한창 방송되던 MBC '기황후'와 직접적으로 비교되기도 했다. 이런 트렌드 속에서 '정도전'은 대하사극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굳이 역사적 사실이 재미있는 허구의 무언가와 합쳐져야만 재미있다는 생각을 깨고, 역사적 팩트 하나로 흥미진진한 스릴러와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정통 사극인 만큼,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사의 힘이 두드러졌고, 600여년 전의 이야기가 과거란 시간에만 마무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 상황에 맞물려 오늘날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가장 클래식했던 이 드라마가, 오히려 드라마계의 다양성에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일면 아이러니하다.
- 연기 잘 하는 배우란
'정도전'이 가장 돋보인 점은 배우들의 활용이다. 굳이 티켓 파워나 시청률 보증 수표라 불리지 않더라도, 얼마나 내공 있는 중년 연기자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조재현은 이 작품을 통해 단단한 베테랑 연기자임을 드러냈다. 정도전이 감정 변화의 표현이 크지 않은 인물인 만큼, 뚜렷한 임팩트를 남기기 어려움에도 강단 있는 무게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그가 중심에서 역할을 잘 했기 때문에 유동근 같은 날아다니는 연기자들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카리스마를 분출한 이는 이성계 역 유동근이다. '사투리를 쓰는 이성계'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정통 사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도 새로움을 선사했다. 더욱이 기존에 가졌던 역사적 인물의 인식을 넘어 이성계의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임호는 기존에 봐 온 정몽주와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고, 박영규는 이인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대중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방원 역 안재모는 후반부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로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연기 내공을 펼쳐보이며 기대와 동시에 받았던 우려를 씻어냈다.

- 어떤 지도자가 참인가
정도전은 방송 내내 물었다. '참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드라마의 제목이 '정도전'이라고 하여, 전적으로 정도전의 편에 서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내가 생각한 왕은 이런건 아니였지비"라고 후회섞인 말을 하는 모습, 이인임이 정도전을 향해 내뱉은 "진짜 괴물은 과도한 이상과 권력이 합쳐질 때 나타나지. 무척 괴로울 것이오"라는 말, 그리고 실제로 변해가던 정도전의 모습은, 주인공인 정도전 역시 불완전한 한 인간이고 정치가임을 드러냈다.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는 민본주의 다원화된 사회. 집단 지도 체제라는 선구안이었다. 한 발 앞선 개혁이었으나 이상주의자에 가깝다는 평도 있다. 반대의 지점에는 이방원이 있다. 이방원은 일면 강력한 힘의 단결을 꿈꾸는 행동파다. 하지만 피바람을 불고 온 왕자의 난의 주인공으로 강력한 왕권을 외치며 수많은 희생자를 낸 그는 분분한 평가를 얻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항구적인 태평성대를 보장하는 나라'를 꿈꿨던 정도전의 희망이 드러난 나라는 일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원의 아들인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 시기였다. 이방원이 다져놓은 강력한 힘 위에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세종의 나라가 탄생했다. 오늘날 시청자들에게 21세기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만 같은 '정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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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정도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