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주말 대하사극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이 지난 29일 50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듣는 드라마였다.
1부에서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 대업의 꿈을 꾸며 혁명을 결의했고, 2부에서는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3부에서는 조선건국 후 정도전이 이방원의 손에 죽음을 맞는 '순교'의 과정이 펼쳐졌다. 마지막 방송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의 피의 난 속에서도 꼿꼿하게 죽음을 마주했다. 가는 길에 먼저 떠나보냈던 정몽주(임호)를 보았다. 정도전의 삶은 그 자체로 극적인 드라마이며, 아슬아슬한 스릴러였다. 숱한 위기와 역경을 헤치고 살아남았으나 이방원에게 죽음을 맞았다. 그의 방심인지, 아니면 과오인지는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정통사극으로서 '뻔하지 않은 고전'을 만들어 낸 '정도전'은 좋은 드라마란 무엇인고, 훌륭한 연기자의 요건은 무엇이며 나아가 작품 외적으로 나라의 참 지도자란 어때야 하는 가를 물었다. '정도전'의 인기 중심 요인이 된 이들을 넘어 역시 '정도전'을 살리는 데 한 몫했던 재미있던 요소들을 살펴봤다.


- 허지웅
사실 드라마의 진행에서 '허지웅 버프'가 어느 정도 존재했다는 반응이다. 시청률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기 보다는 이슈의 집중을 젊은 세대까지 넓혔다.
평론가 겸 방송인 허지웅은 지난 4월 방송된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에서 '고려에서 온 그들'이라는 주제로 KBS '정도전'과 MBC '기황후'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며 "지금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정도전'을 보지 않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다. 지금까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사극이 '대왕 세종'인데 '정도전'은 이를 뛰어넘은 정통사극의 끝판왕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정도전'은 정말 훌륭한 드라마로 장점이 너무 많다.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에 재미도 있어야 하는데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하고 있다"라며 유동근의 연기도 극찬했다. 그는 "역대 사극 중 최고의 역할과 배우는 '용의 눈물'의 태종을 연기한 유동근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에서 이성계를 연기하는 유동근은 이를 능가한다"고 평했다. "사실 KBS 공영방송 수신료 정상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도전' 끝날 때 자막이 나오면 '그래 정상화 해야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애정을 보였다.
정도전에 대해 "이건 현 시대가 원하는 캐릭터"라고 분석한 그의 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더불어 '독설가의 칭찬'이라는 면에서 어느 정도 '정도전'에 대한 관심을 보다 넓게 환기시킨 것은 사실이다.

- 예고편
역대급 엔딩 이전에 역대급 예고편이 먼저 있었다.
'정도전' 예고편을 만드는 사람은 상 줘야 한다"라는 반응이 있을 만큼 '정도전'의 예고편은 애청자들에게 본편 이상의 큰 즐길 거리였다. 배우 서인석이 분한 최영 장군이 5초 등장만으로 대형 화제를 일으킨 바 있고, 정도전(조재현)의 "새로운 역사..史자를 바치겠습니다", 정몽주(임호)의 "나라에 대한 충성..忠자를 바치겠습니다"라는 한자대결 대비로 인상깊은 대립을 선보인 바 있다.
일면 직접적인 스포 유출이었다는 점에서도 타 드라마의 예고편과는 차별화 됐다. 다음 회 인물의 죽음이 바로 그려졌다. 물론 교과서 자체가 스포였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최고 역대급 예고편이라 꼽는 방송은 43회 마지막에 등장했던 44회 예고편이었다. 이방원과 정도전의 표정으로 꾸며진 10개에 달하는 교차편집은 스릴이 넘쳤다. 리듬감 있는 기술에 더해 이방원과 정도전의 본격 대립이 수면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정도전'은 예고편을 보면 그 화를 다본 느낌이다"라는 투정(?)이 있을 정도였다. 예고편에도 기승전결이 있었다.

- 사투리
초반 '정도전'을 다른 사극과 차별화시킨 것은 사투리였다. 지난 1월 12일 함경도 사투리쓰는 이성계의 등장은 일면 센세이셔널했다.
'정도전' 속 유동근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 연기로 파격을 안겨줬다. 북방 출신의 장수답게 거친 수염을 기르고 모피까지 두른, 그리고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이성계라니. 너무나 뻔할 것 같았던 캐릭터를 단숨에 가장 신선한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역사적 인물 이성계를 안방극장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성계가 그의 오른팔이자 의형제인 이지란(선동혁)에게 자신이 꾼 꿈 얘길 들려주며 “집이 무너졌는데 내래 그 안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디고 나왔어. 이거이 무슨 뜻 갑네?”라며 훗날 왕이 될 자신의 운명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는 일면 전율이 일었다.
당시 유동근의 분량은 5분여에 불과했지만 사병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고려의 맹장다운 포스와 더불어 전에 들어본 적 없는 듯한 사투리 연기는 이 드라마가 기대 이상임을 직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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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공, '정도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