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주말 대하사극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이 지난 29일 50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듣는 드라마였다.
지난 29일 오후 방송된 최종회에는 요동정벌을 앞두고 이방원(안재모 분)의 역습에 최후를 맞은 정도전(조재현 분)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정도전을 기습한 이방원은 정도전을 자신의 신하로 만들기 위해 회유했다. 자신은 정도전이 주창하는 요동정벌. 사병혁파. 병농일치. 중농. 민생. 그 밖에 정도전이 떠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테니 재상정치만 포기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도전은 “지금 농을 하자는 것이냐”라며 재상정치 없이는 민본의 대업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임금은 이 씨가 물려받았지만 재상은 능력만 있다면 성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 나라 모든 성씨를 합쳐서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백성이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낸다. 해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고 더 안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군왕정치를 추구하는 이방원은 이 나라의 주인은 군왕이라고 반박했지만 정도전은 “틀렸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임금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도전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치소신을 지키며 의연한 죽음을 맞았다.
1부에서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 대업의 꿈을 꾸며 혁명을 결의했고, 2부에서는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3부에서는 조선건국 후 정도전이 이방원의 손에 죽음을 맞는 '순교'의 과정이 펼쳐졌다. 마지막 방송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의 피의 난 속에서도 꼿꼿하게 죽음을 마주했다. 가는 길에 먼저 떠나보냈던 정몽주(임호)를 보았다. 정도전의 삶은 그 자체로 극적인 드라마이며, 아슬아슬한 스릴러였다. 숱한 위기와 역경을 헤치고 살아남았으나 이방원에게 죽음을 맞았다. 그의 방심인지, 아니면 과오인지는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정통사극으로서 '뻔하지 않은 고전'을 만들어 낸 '정도전'은 좋은 드라마란 무엇인고, 훌륭한 연기자의 요건은 무엇이며 나아가 작품 외적으로 나라의 참 지도자란 어때야 하는가를 물었다.
퓨전사극이 대세가 되고 사극 소재의 판타지가 유행처럼 만들어졌던 요즘, 복합장르가 아니면 시청률 면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던 와중에 '정도전'은 정통 사극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정통 사극인 만큼,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사의 힘이 두드러졌고, 600여년 전의 이야기가 과거란 시간에만 마무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 상황에 맞물려 오늘날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또 '정도전'이 가장 돋보인 점은 배우들의 활용이다. 굳이 티켓 파워나 시청률 보증 수표라 불리지 않더라도, 얼마나 내공 있는 중년 연기자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조재현은 이 작품을 통해 단단한 베테랑 연기자임을 드러냈다. 정도전이 감정 변화의 표현이 크지 않은 인물인 만큼, 뚜렷한 임팩트를 남기기 어려움에도 강단 있는 무게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그가 중심에서 역할을 잘 했기 때문에 유동근 같은 날아다니는 연기자들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카리스마를 분출한 이는 이성계 역 유동근이다. '사투리를 쓰는 이성계'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정통 사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도 새로움을 선사했다. 더욱이 기존에 가졌던 역사적 인물의 인식을 넘어 이성계의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임호는 기존에 봐 온 정몽주와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고, 박영규는 이인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대중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방원 역 안재모는 후반부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로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연기 내공을 펼쳐보이며 기대와 동시에 받았던 우려를 씻어냈다.
정도전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드라마의 제목이 '정도전'이라고 하여, 전적으로 정도전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는 민본주의 다원화된 사회. 집단 지도 체제라는 선구안이었다. 한 발 앞선 개혁이었으나 어찌보면 그는 이상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매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드라마. 교과서가 스포일러였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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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