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21세기형 ‘용의눈물’에 열광한 까닭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4.06.30 15: 33

KBS 1TV 주말드라마 ‘정도전’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 가운데 막을 내렸다. 일일드라마나 뉴스 시청률로는 늘 1위를 기록하는 KBS 1TV지만, 이렇게 대하드라마로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을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다.
‘정도전’은 정통 사극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MBC ‘조선왕조오백년’의 뒤를 잇는 정통 사극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예가 KBS 1TV ‘용의눈물’, ‘왕과비’, ‘태조 왕건’ 등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송 내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왕궁을 배경으로 역사적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정통 사극의 인기는 사그라지고, 좀 더 상상력의 허용범위가 넓고 쉬운 퓨전 사극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 사극의 특징상 실존했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우가 많았지만, 퓨전사극에서 이들은 이름만 빌린 것일 뿐 실제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퓨전 사극은 때로는 ‘막장’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내용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퓨전 사극의 인기 속에서 정통 대하드라마를 표방한 ‘정도전’은 큰 기대감 없이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뚜껑을 연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대사 한 줄 한 줄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시청자들의 소감이 줄을 이었고, 엄청난 연기 내공을 쏟아 붓는 중견 연기자들의 연기 모습이 담긴 동영상들이 이곳저곳에 게재됐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열광한 것에는 무엇보다 시의성이 한 몫을 했다.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이 터지고, 대한민국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회의감이 극에 달한 때였다. 500년 전 진지한 모습으로 백성과 정치, 개혁과 이상을 논하는 선조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올해 초 불었던 영화 ‘변호인’ 열풍과도 비슷한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정치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도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낸 핵심 이유가 됐다. 정현민 작가는 정치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경험을 살려 ‘정도전’ 속 촌철살인 대사를 창조해냈다. "정치하는 사람의 허리와 무릎은 유연할수록 좋다",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 세상을 바꾸려거든 힘부터 길러라. 고작 당신 정도가 떼쓴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난세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의혹은 생겼을 때가 아니라 상대를 감당할 수 있을 때 제기하는 것이다” 등의 대사는 과거 뿐 아니라 현대 처세법에도 걸맞은 내용이라 평가되며 명대사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명대사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읊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정도전 역의 조재현을 비롯해 이성계 역을 맡은 유동근, 이인임 역의 박영규, 최영 역의 서인석, 정몽주 역의 임호까지 오랜 연기 경력의 명품 배우들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몰입도 강한 연기력으로 감탄을 끌어냈다.
사실 '정도전'이 그리는 사건들은 어떤 부분 과거 방송됐던 '용의 눈물'과 다를바가 없다. 그럼에도 이뤄낸 성과는 '용의 눈물'을 뛰어 넘었다 표현해도 괜찮을 정도다. 겨우 맥을 이어가고 있던 정통 사극을 다시 살려냈을 뿐 아니라 시의 적절한 내용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감탄할만한 대사 등 작품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이뤄냈다. 21세기형 '용의눈물'의 귀환은 이렇게 성공했다.
eujenej@osen.co.kr
'정도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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