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다시 도박을 걸었다. 어찌보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도박은 FIFA랭킹 2위이자 이번 대회 우승후보 중 하나인 독일에게도 통하며 이 거인을 벼랑까지 몰고 갔다.
알제리는 1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에스타디오 베이라-리우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독일과의 16강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1-2로 아쉽게 졌다. 1982년 조별리그에서 독일(당시 서독)을 깨며 2승1패를 기록하고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공격 의지 없는 경기 때문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이 있는 알제리는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답게 노련하게 싸웠다. 지긴 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경기였다.
경기 전 예상은 독일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알제리가 좋은 경기력으로 H조를 통과하며 다크호스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이번 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인 독일을 넘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32년 전 ‘히혼 불가침 조약’에 의해 억울하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알제리의 설욕 의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의 기민한 전술적 대응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전 경기 선발 라인업에서 5명을 바꿔 화제가 됐었던 할릴호지치 감독이었다. 첫 경기 패배에 의한 전술적 결단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변화폭이었다. 그러나 할릴호지치 감독의 승부수는 통했다. 한국의 빈틈을 노린 이 전술은 전반에만 3-0을 만들어내며 값진 승점 3점으로 이어졌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영리한 ‘다윗’ 알제리의 전술에 ‘골리앗’ 독일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러시아전 선발 라인업과 또 5명의 변화를 줬다. 모스테파, 굴람, 라센, 타이데르, 순다니가 새로 선발 라인업에 들어갔다. 역시 큰 폭의 변화였다. 전술이 노리는 바는 명확했다. ‘선 수비, 후 역습’의 결정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5명의 수비수들은 독일의 짧은 패스를 막기 위해 문전에 촘촘히 늘어섰다. 완벽한 포지셔닝에 빈틈이 없었다. 가뜩이나 전방 공격수의 숫자가 부족한 독일이었기에 수는 더 많아 보였다.
여기에 4명의 미드필더들이 다시 그 앞에 들어섰다. 독일이 자기 진영에서 패스를 돌리는 것은 방치했지만 대신 자기 진영에 들어오자마자 거친 압박으로 독일을 압박했다. 파울을 주저하지도 않았다. 꽉 짜인, 상대가 볼 때는 숨 막히는 수비 전형이었다. 조금만 공격 전환 템포가 늦어도 이미 알제리 선수들은 모두 자기 진영에 들어온 뒤였다. 지나치게 짧은 패스로만 공격을 풀어나가고자 했던 독일은 알제리의 덫에 걸려 자멸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역습은 위력적이었다. 전방에 위치한 슬리마니, 페굴리 등은 물론 왼쪽 풀백은 굴람까지 활발하게 역습 상황에 가담하며 독일 수비 뒷공간을 뚫어냈다. 상대적으로 발이 느린 독일 포백은 오프사이드 라인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며 대응에 나섰지만 알제리의 빠른 발에 고전하는 양상이 역력했다.
자연히 체력적으로 많은 소모가 필요한 전술이었지만 적절한 경기 소화를 통해 체력을 안배하고 있었던 알제리의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다. 후반 중반까지도 변함없는 활동량을 통해 독일을 압박했다. 공수 전환은 여전히 빨랐다. 여기에 독일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까지 미리 예상한 듯 측면에서의 큰 크로스를 통해 독일 문전을 공략함으로써 독일 수비수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다만 연장 시작부터 딱 한 번의 결정적 찬스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많이 뛴 알제리 선수들은 이 골을 만회할 만한 힘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뒤져 있는 양상에서 어쩔 수 없이 공격적으로 나서야 했고 더 많은 체력이 소모됐다. 자연히 수비도 전열이 흐트러지며 외질에게 추가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자부가 추격골을 넣는 등 끝까지 독일을 괴롭혔다.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다윗의 아쉬운 퇴장이었다. 그러나 퇴장하는 길에는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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