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하나를 봤을 때, 누구도 ‘고교처세왕’ 속 능청스러운 정수영의 캐릭터를 상상하지 못했다. 음악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연애시대’, ‘메리대구 공방전’ 등에서 워낙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터라 “이번에도?”라는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배우의 공백기가 다소 길게 느껴졌기에 브라운관 속의 모습이 어색하지는 않을지, 대세 서인국과의 호흡에서 혹 뒤처지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하나는 ‘고교처세왕’ 첫 회 만에 그런 우려들을 말끔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힘없는 계약직 직원 정수영을 마치 자신의 본모습인 듯 완벽하게 연기해 보이는 이하나의 모습은 매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촌스런 옷차림에 뿔테안경, 살짝 굽은 등과 어정쩡한 걸음걸이 등 외모 뿐 아니라 행동과 동작 하나하나까지 신경 쓴 섬세한 연기력은 작품수가 많이 않음에도 그를 ‘믿고 볼 만한 배우’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고교처세왕’은 서인국이 1인 2역의 주인공을 맡는 만큼 상대적으로 서인국에게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는 작품. 그러나 이하나는 한창 물오른 연기력을 발휘하는 서인국에게 밀리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완벽한 호흡을 이뤄내고 있다.

특히 배우로서 이하나를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정수영이 자칫 잘못 그려질 경우 흔한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이 될 수 있는 캐릭터란 점이다. 두 본부장 사이에 끼인 계약직 여직원이라니, 왠지 모르게 낯익은 설정이다.
물론 작가가 그려낸 정수영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술에 취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주정을 부리고, 사무실 한 켠에서 이끼를 키우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혼잣말을 주절거리며 4차원 기질을 발휘한다. 그러나 만약 이 캐릭터를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예쁘게 보이는 데만 급급한 여배우가 맡았다고 상상하면 드라마가 서인국의 활약만으로 이처럼 호평을 받았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예쁜 외모로만 어필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눈길이 고울 리 없기 때문이다.
반면 정수영을 연기하는 이하나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취 연기를 할 때는 확실한 주정과 몸놀림(?)으로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구부정하게 걷다가도 자신의 명줄을 쥔 본부장 앞에서는 군인 못지 않게 우렁찬 목소리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재창해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런 모습이 분명 예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묘한 매력이 있어 주인공 서인국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제 막 중반을 향해 가는 '고교처세왕'은 이민석(서인국 분)이 정수영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창 코믹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이하나는 삼각관계 속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될까?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하나의 연기인만큼 흔한 캐릭터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이제는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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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처세왕'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