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한일 관계’를 연상케하는 두 축구 라이벌이 공교롭게도 유럽의 마지막 자존심을 나란히 짊어지게 됐다. ‘철천지원수’인 독일과 네덜란드가 월드컵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던 남미의 벽을 격파하기 위해 나선다.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2014 브라질 월드컵도 4강 대진이 확정됐다. 5일(이하 한국시간)에는 독일과 개최국 브라질이 4강행을 결정지었다. 독일은 유럽 라이벌 프랑스를 1-0으로 잡았고 브라질은 남미 돌풍의 주역인 콜롬비아를 2-1로 꺾고 4강에 합류했다. 6일에는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가 나란히 4강행 기차를 잡아 탔다. 아르헨티나는 벨기에를 1-0으로, 네덜란드는 코스타리카를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4강에 합류했다.
이번 월드컵은 역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 1위 팀들이 모두 8강에 합류한 대회로 기억된다. 그만큼 4강을 향한 경쟁이 더 치열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8강에서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은 팀들이 모두 4강으로 진출했다. 그나마 프랑스가 이변을 노려볼 만한 팀이라는 평가였으나 독일의 일사분란함은 프랑스의 통과를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이제는 정말 진검승부가 됐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고는 없다. 네 팀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양새다. 다만 유럽의 팬들은 독일과 네덜란드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랜 기간 이어졌던 ‘남미 징크스’를 깰 가능성이 남은 마지막 두 팀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남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유럽팀이 우승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미 팀들의 강력한 홈 이점, 그리고 기후 적응에 애를 먹었던 유럽 팀들은 신대륙 상륙에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첫 월드컵이었던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유럽 팀은 유고슬라비아가 4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스웨덴과 스페인이 나란히 3.4위전으로 떨어졌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브라질에 결승서 졌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에 역시 결승서 패했다. 한편으로는 북중미에서 열린 세 차례의 월드컵(1970·1986·1994)도 모두 남미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역사상 첫 아시아 지역 월드컵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남미의 브라질이, 역사상 첫 아프리카 지역 월드컵이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유럽의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내심 ‘남미에서 우승을 차지한 첫 유럽팀’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도 없을 수 없다. 그러려면 두 팀 모두 준결승에서 남미의 터줏대감들을 꺾어야 한다. 독일은 9일 브라질과, 네덜란드는 10일 아르헨티나와 결승행 티켓을 놓고 다툰다. 만약 두 팀이 결승에서 격돌한다면 이 또한 빅 매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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