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승엽(38, 삼성 라이온즈)이 13홈런, 타율 .253에 그쳤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나이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만은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웠다.
류 감독은 지난해 이승엽과 두 팀에서 함께했다. 하나는 삼성, 다른 하나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이었다. 지난 시즌 이승엽의 부진 원인, 그리고 올해 부활의 비결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1년 내내 함께한 류 감독이었다.
이승엽이 올해 다시 좋아진 이유를 류 감독에게 묻자 “(타격 시) 손 높이를 교정한 것도 있지만, 지난해에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베테랑들은 그 시기에 몸을 만든다. 경기에 조금씩 나가면서 감각을 올리는 기간인데, 바로 WBC 경기를 해버렸다”는 것이 류 감독의 설명이다.

실제로 베테랑 선수들은 대체로 컨디션을 늦게 끌어올린다. WBC 기간은 일반적인 시즌으로 치면 시범경기가 개막도 하지 않은 시점에 시작된다. 따라서 실전을 위한 몸을 일찍 만들어야 하고, 정작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는 평소와 같은 몸 상태로 임하기 힘들다. 이승엽이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은 WBC에 출전했던 다른 베테랑 선수들이 그랬던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류 감독은 “(부진 원인에 대해)승엽이와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WBC때 몸을 빨리 만들어서 컨디션이 조금 망가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반대로 올해는 본인이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손의 위치를 바꾼 것이 대표적인 예다.
WBC에 나갔던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이다. 류 감독이 “메이저리거들이 WBC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류 감독은 이승엽의 부진 원인을 나이에서 찾지 않고 컨디션 조절 실패라는 보편성에서 찾았다. 불혹에 가까워졌다고 해서 특별한 시도를 하기보다 차근히 시즌을 준비했고, 이는 충분한 해결책이 됐다.
지난 시즌에 비해 전력 면에서는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삼성의 현재 승률(.676)은 역대 어느 우승팀과 비교해도 당당하다. 류 감독이 이끈 지난 3년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며, 위닝 시리즈를 해도 승률이 떨어질 정도다. 이승엽이 국내 복귀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삼성의 고공행진을 일정부분 설명해주고 있다.
류 감독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류 감독은 “승엽이가 잘 해주니 팀이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아진 것 같다. 안타는 2~3개가 나와야 1점인데, 홈런은 한 방에 2~3점씩 나온다.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일이다”라며 이승엽 효과에 반색했다.
안타를 치지 못한 다음날은 더욱 분발한다는 이승엽은 지난 6일 잠실 두산전에서 무안타로 침묵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5경기에서 무안타 경기, 홈런이 동반된 멀티히트 경기를 반복하고 있다. 다음은 대포가 나올 차례다. 이번에도 이승엽의 방망이에 시선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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