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남성이라면 좋든 싫든 병역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군대, 줄을 잘 서야한다’는 말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기왕이면 ‘유력한 배경’을 가진 입영 동기생의 앞뒤 군번에 ‘운 좋게’ 걸린 사람들은 전방이나 험한 곳이 아닌 상대적으로 신상이 편한 곳으로 덩달아 배치 받는 일이 많았다. 군대, 편한 곳, 좋은 보직이 있는가. 물론 있다.
이른바 특권층의 자제는 연줄과 힘을 동원해 후방으로 배치된 일이 다반사였다. 그 시절 군복무를 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되새기고 싶지 않은 불편한 과거를 우리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특혜에 물든 후보자들을 통해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1974년, 40년 세월의 저 너머로 돌아가면 입대 후 일주일 남짓 지나서부터 상급자의 수시 매타작에 영문도 모르고 몸을 내맡기고, 한 겨울 엄동설한에 훈련에 나가 발목을 뒤덮는 눈을 헤치며 꽝꽝 언 땅을 곡괭이로 파내 전봇대를 심고, 전기줄을 걸어매야했던 수많은 사병들이 있었다. 카우를 신고 매운바람이 잉잉대는 전봇대에 올랐다가 자칫 잘못 미끄러지면 앞가슴이 새카맣게 타는 중화상을 입는 사병도 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훌륭한 이는 군복무 중에 버젓이 대학원을 다니며 석, 박사 과정을 밟고, 어떤 뛰어난 분은 대학원에 적을 두고 시간강사로 나서기도 했으며, 심지어 어떤 굉장한 분은 병역 특례 중에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 게 바로 자랑스러운 한국, 한국인이다. ‘신성한 병역 의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출세의 길을 닦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확인하고 괜스레 속이 뒤집힌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고위 공직자로 내정된, 후보자들의 맨 얼굴이 그렇다.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기회 포착을 기가 막히게 하는 분들에게 이 나라의 행정을 맡겨야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타의에 의해 사퇴했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해군장교 복무 36개월 동안 그 절반을 무보직 상태로 서울대 대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놀랄 일이 아니다. 총리실의 해명은 “무보직 상태여서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대학원을 다녔다.”는 것인데, 그런 특혜가 가능한 곳이 바로 이 나라 군대였다. 그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누군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병역 특례 기간 중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고, 정종섭 안정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군 복무 중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참 대단하다. 군이,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이 그처럼 몰캉했다는 건가. 비리 종합세트인 교육부총리,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서도 병역 특혜야말로 어찌 보면 가장 심각한 비리다. 그런 것을 태연하게 용납하는 게 포용력 크고 가슴 넓은 이 나라 국회의원들이다. 초록이 동색인가.
보통의 평범한 사병들이 일선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 그네들은 책가방을 들고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대학을 안방 드나들 듯이 했다.
이 대목에서 ‘판소리 흥부가’ 생각이 난다. 놀부가 부자가 된 동생 흥부를 찾아갔다가 방안에 있는 화초장(전통 가구)을 빼앗아 들고 나온다. 놀부가 화초장을 등에 매고 신이 나서 읊조리되, “화초장, 화초장”하다가 개울을 건너면서 그만 이름을 까먹어버렸다.
헷갈린 놀부,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아이고 아니로구나. 초장화, 장초화, 장화초, 화장초, 초화장,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하면서 갑갑해하며 가슴을 친다. 놀부의 심보가 판을 치고, 온 세상을 어지럽히는구나. 어찌할거나.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