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때문에 평화가 깨진다. 그리고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맷 리브스 감독, 이하 혹성탈출2)이 7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첫 공개됐다. 당초 개봉일을 16일에서 10일로 변경하면서 국내 영화계의 들끓는 비판 여론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공개된 것이라 더욱 관심이 쏠린 상황.
'혹성탈출2'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가 세상을 휩쓴 후 10년, 급속도로 진화한 유인원들이 도시를 떠나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번영을 이룬 가운데, 유인원들을 이끄는 시저(앤디 서키스)가 다시 생존한 인간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앤디 서키스, 제이슨 클락, 게리 올드만, 케리 러셀 등이 출연한다.

이 영화는 현 영화계에서 마치 '공공의 적' 같은 분위기다. 변칙 개봉으로 현재 상영 중인 한국영화 '신의 한수'와 '소녀괴담', 그리고 10일 개봉 예정인 '좋은 친구들'은 사실상 직격탄을 맞게 됐다. '사보타지' 등 개봉을 준비했던 외화수입사들 역시 '뜨악'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 만큼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혹성탈출2'를 두고 한국영화 제작사들에 이어 외화 수입사까지도 똘똘 뭉쳐 이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개봉 철회를 요구하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측과 변칙개봉이 아니라는 '혹성탈출'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고, '혹성탈출2'는 현재까지 10일 개봉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상 도덕적으로, 그리고 업계 정서상 충분히 '혹성탈출2'의 배급사 이십세기폭스사는 눈총을 받을 만 하다. 이 영화를 피해가기 위해 배급 전략을 짰던 작품들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게 됐고, "심의가 빠르게 나와 미국과의 동시 개봉을 위해 10일로 결정했다"란 해명은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해야 할 부분은, 한정된 파이를 위협하는 이 같은 막강한 대작의 등장, 즉 외부 요인의 변수는 언제나 있을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 자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변칙 개봉은 외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계 안에서도 끊임없이 있어왔고, 그래서 서로 빈정 상해하는 일 또한 허다했다.
물론 변칙개봉 자체가 지양해야 할 문제임은 확실하다. 갑작스럽게 일주일을 앞당긴 개봉 자체는 분명히 비난 받을 일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벌써 뜨거운 호평을 얻고 한국에 상륙하는 이 대작은 한국영화들이 언젠가는 꼭 넘어야 될 산이었을 지도 모른다.
공개된 영화는 프롤로그였다고 볼 수 있는 전편을 넘어 본격적으로 서사의 막을 올린다. 오락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묵직하고 비장한데, 앞서 말했듯 몇몇 때문에 평화가 깨지고 외부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치명적임을 보여준다. 시원한 액션이나 짜릿한 쾌감은 부족하지만 유인원들이 주인공이라는 자체가 진기한 큰 볼거리다. 가장 큰 장점은 마냥 가벼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차별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일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끝까지 간다'나 '신의 한 수'가 자체 콘텐츠로 외화에 결코 밀리기만 하지 않음을 증명한 바 있다. 해외에서 호평이 주를 이루나 이것이 국내 극장가에 그대로 통할지는 미지수고, 또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했던 독특한 블록버스터였던 전편보다 더 흥미롭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혹성탈출2'가 파이 확장을 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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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2'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