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한 줄 알았다. 그렇다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정말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에는 ‘의리’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축구국가대표팀이 참패를 한 지도 열흘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세계 수준에 근접하고 또 근접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팀들이 토너먼트에서 명승부를 벌이는 동안 우리는 쓸쓸히 귀국해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준비 과정조차도 너무 느릿느릿하다. 월드컵에서 실패를 맛본 여러 나라들이 만회를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사실상 이번 월드컵을 바라보는 축협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딱 한 번 있었다. 지난 3일 허정무 축협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 나서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알맹이는 없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며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말들을 내놨고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기자회견을 할 이유가 없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연히 여론을 되돌리는 데도 실패했다.

물론 즉흥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 좋을 것은 없다. 4년 뒤 월드컵이 아닌, 40년 뒤를 내다보고 하나둘씩 원점에서 모든 것을 점검해야 한다. 항상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원칙 바로 세우기는 하루 이틀의 시간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축협이 어떠한 건설적인 대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정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축협은 ‘반성, 책임, 논리’가 하나도 없는 ‘3無’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결정한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시간 탓’이라고 했다. 1998년 차범근 감독을 현장에서 즉각 경질한 사례는 시대가 지났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번 유임은 당장 전임자와 비교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월드컵 종료 후 그 논리를 정교하게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답답했다. 그러나 축협은 그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논리를 보완할 만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이 잠잠해질 때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반성도 없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도 지금까지 흔적이 없다. 반성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 대회에 참고할 부분이 있을 텐데 그 과정조차도 월드컵 32개 국 중 최하위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을 비롯, 월드컵을 준비한 이들 중 책임을 지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는 '지금까지도' 단 하나 없다. “잘못은 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축협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의리 하나는 확실한 모습이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소집 기간 중 땅을 샀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축협은 하루 만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물론 홍 감독의 사적인 영역은 지켜줘야 한다. 잘못 보도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앞선 세 가지에 비하면 허탈할 정도의 기민한 대응이다. 의리가 아닌, 논리와 책임, 그리고 반성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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