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타선과 중심타선의 축인 선수들이 자기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가장 정상적으로 가동됐을 때에도 기대하기 힘든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 8일 LG 트윈스와의 잠실 라이벌전에서 장단 22안타를 폭발시켰다. 선발 유희관이 5회말 들어 급격히 무너지며 4이닝 10피안타 7실점으로 부진했지만, 경기는 타선이 활발했던 두산의 14-8 승리로 끝났다. 호르헤 칸투가 옆구리 통증으로 빠졌지만 공백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3번이던 김현수는 칸투의 자리인 4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칸투의 빈자리를 메웠다. 칸투의 트레이드마크인 홈런을 대신 때리지는 못했지만, 6타수 3안타 1타점으로 4번 타순에 걸맞은 활약을 보였다. 김현수 자리에 들어온 민병헌은 6타수 4안타 3타점으로 ‘타격기계’처럼 쳤다.

1번 정수빈은 5월의 민병헌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5타수 4안타 1볼넷 2타점으로 파괴력을 과시한 정수빈은 홈런도 하나 추가했다. 코리 리오단을 공략해 터뜨린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이었는데, 선두타자 홈런으로 팀에 리드를 안기는 것도 민병헌과 비슷했다.
9번 최재훈은 비록 정수빈과 같은 빠른 발은 없었지만, 5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하위타선의 핵이 됐다. 오재원 대신 2번으로 나선 최주환은 최재훈과 정수빈이 자주 출루해준 덕분에 6타수 3안타 2타점으로 해결능력을 뽐낼 수 있었다. 정수빈-최주환 테이블 세터는 찬스 메이킹과 해결을 동시에 하는 민병헌-오재원 조합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자신의 자리를 지킨 두 선수는 부진에서 벗어났다. 5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을 올린 5번 홍성흔은 2경기 연속 멀티히트이자 5월 29일 광주 KIA전 이후 첫 3안타 경기를 했다. 8번 김재호는 4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으로 오랜만에 깨어났다. 안타는 17일 만에, 멀티히트는 20일 만에 나왔다.
3안타 이상만 5명이나 있었던 두산 타선은 7번 오재일을 제외하고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했다. 1회초부터 3회초까지는 매 이닝 득점에 성공했고, 4점을 뽑아낸 빅이닝도 2번이나 있었다. 14안타를 내주고도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몫을 하면서 만드는 승리도 의미 있지만, 누군가가 빠졌을 때 그 자리를 다른 선수가 메워주는 것은 팀이 강해지는 색다른 계기가 되기도 한다. 두산은 중심타자 칸투가 빠진 부담을 1명이 짊어지지 않고 타순의 연쇄 이동으로 해결했다.
이로 인해 자칫 전체적인 짜임새가 약해질 수도 있었지만, 동반 폭발하며 두산 타선에는 새로운 형태의 짜임새가 생겼다. 종종 선발 제외되는 칸투의 부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조합을 만들어낸 것도 단순한 1승 이상의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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